MBC ‘PD수첩’ 제작진들이 지난 21일부터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2017년 한국의 노동 현실을 다루려던 기획이 조창호 시사제작국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 등 MBC 간부들에 의해 거부된 데 따른 결정이다. PD수첩 소속 PD 11명 가운데 10명이 제작거부에 참여했다.

MBC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PD수첩 제작진은 내달 1일자 방송 아이템으로 ‘한상균은 왜 감옥에 있는가’라는 아이템을 다루겠다며 지난 15일 조 국장에게 기획안을 제출했다. 이후 ‘한상균을 향한 두 개의 시선’이라는 제목으로도 제작 허가를 요청했지만 이 역시 묵살됐다.

조 국장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명 문제를 PD수첩 소속의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다룬다면 이해 상충에 따라 제척 사유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MBC는 21일 ‘시사제작국’ 명의로 “두 달 전에 내려진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부정하는 내용의 방송을 하는 것은 자칫 대한민국 사법 체계를 뿌리째 부정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따라서 이런 내용의 방송을 하려면 광범위한 법률 검토와 함께,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교하고 폭넓은 취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방송 날짜를 불과 2주 남짓 앞두고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상균 위원장 관련 방송이 사안의 중요성만큼의 충실하고 밀도 있는 취재를 담보할 수 있을지 강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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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리대로라면 언론노조에 소속된 대다수 MBC PD들은 한국의 노동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기 어렵다는 모순이 생긴다. 

아울러 MBC의 경우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비판, MBC 청문회 관련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비판, 자사의 이해가 걸린 소송전 등을 뉴스데스크 리포트로 보도해 ‘전파 사유화’를 대표하는 언론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관련기사 : MBC 경영진, ‘뉴스데스크’는 우리의 것?)

또한 PD수첩 제작진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상균 위원장 이야기뿐 아니라 경찰의 물대포 직사살수에 목숨을 잃은 농민 백남기씨 등 그간 MBC가 다루지 못했던 다양한 현안을 담으려 했다.

해직 언론인인 최승호 전 PD수첩 PD(현 뉴스타파 앵커)는 PD수첩 제작진들의 제작 거부에 대해 “이번 만이 아니라 MBC 사측은 사사건건 PD수첩의 자율적인 제작을 막아왔다”며 “PD들이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 전 PD는 또 “지난 18일에 PD수첩이 ‘4대강, 22조는 어디로’를 방송하자 사측이 왜 막지 못했냐며 난리를 쳤다는 말이 있다”며 “해당 방송은 4대강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적나라하게 파헤쳤을 뿐 아니라 이명박씨까지 인터뷰 시도하면서 ‘똥침’을 놨기 때문이다. 사측은 담당 PD를 방송 직후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고 주장했다.

한편, PD수첩 제작진은 24일 오전 8시30분부터 출근시간·점심시간·퇴근시간에 제작거부의 이유를 알리는 피켓 시위를 진행한다. 또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구체적인 제작거부 이유에 대해 밝힐 예정이다.

▲ 최승호 전 MBC PD수첩 PD 페이스북.
▲ 최승호 전 MBC PD수첩 PD 페이스북.


아래는 이번 제작 거부에 참여한 이영백 PD수첩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왜 제작거부에 돌입했나?

“PD수첩이 지난 몇 년 간 정말 절실한 사회적 의제를 다루지 못했다. PD 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국장·본부장 선에서 못하게 막아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회사에 맞서거나 의견 차를 보이면 인사 등으로 압박을 해왔다.”

- 제작거부를 결정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저도 2014년 사업부서로 발령 나 스케이트장 관리를 했다. 지난 4월 대법원 판결이 났고 3년 만에 제작 현장으로 돌아와 두 번 방송했다. (편집자주 : 복귀 이후 이 PD가 담당했던 지난 5월30일자 ‘성소수자 인권, 나중은 없다’ 편은 군대 내 동성애 처벌, HIV/AIDS에 관한 오해, 퀴어 퍼레이드, 성소수자 부모 모임, 차별금지법 등을 다뤄 호평을 받았다) 내달 1일 세 번째 방송 기획안으로 노동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최근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 막말도 있었고, 여러 노동 현안이 있지 않았나.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던 2015년 민중총궐기, 불법 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5월31일 대법원에서 징역 3년 확정 선고를 받았다. 어떤 부분이 실정법을 어긴 것인지, 노조위원장을 법으로 처벌하는 게 맞는지,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던 그날의 일도 짚어보고. 아울러 경찰 폭력 등 다양한 문제를 다뤄보려고 ‘한상균을 향하는 두 개의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기획안을 냈다. 그런데 국장·본부장에게 거부당했다. 수긍할 수 없는 이유를 들면서 거부했다.”

- 다른 제작진과 문제점을 공유했나?

“‘나만의 일인지 PD수첩 전체 일인지’ 토론했다. 그동안 PD들의 자율성을 침해했던 일들도 있었고 PD수첩 전체의 일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제작진과) 토론해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PD 두명이 지난 주말 국장을 만나고 왔는데 기획안은 결국 거부됐다. 우리는 함께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결방을 안하고) 프로그램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전제인 PD들의 자율성·공영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 제작거부는 노조 등 다른 조직과 협의됐나?

“PD수첩 차원에서 결정했다. 프로그램을 안 하겠다는 건 어려운 결정이었다. 신분상 민사 문제 등 압박이 있을 수 있어서 보호 수단과 관련해 노조에 몇 가지 확인했을 뿐이다.”

- 사내에서 김장겸 MBC 사장 퇴진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것도 요구사항인가?

“사장이 최종 결정권자이긴 하나 프로그램 안에서 구체적으로 벌어졌던 일을 해소하는 게 1차적인 목표다. PD수첩 문제를 이유삼아 제작을 거부하는 것이다. 제작 거부 이유를 성명서로 낼 생각이고 월요일(24일)부터 피케팅을 하며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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