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탈핵‧탈원전 선언에 두차례나 반대 성명을 낸 원자력 학자들에 대해 공공기관의 과학기술연구자 집단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가 비판에 나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원자력 학계와 같은 과학기술연구자로서 학자들이 내놓은 주장을 보고 창피했기 때문이라고 해당 노조 책임자는 전했다.

폐쇄적인 원자력계를 포함해 우리 과학기술계의 연구 시스템 자체가 적폐라는 점도 그는 강조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의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위원장 김준규) 소속 신명호 정책위원장은 19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신 위원장은 원자력 학계 뿐 아니라 현재 신고리 5‧6호기 건설 임시중단에 앞장서 반대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의 행태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공공연구노조는 정부출연 기초과학‧생명‧화학‧항공우주 등 과학기술분야 연구원 또는 연구기관 소속 조합원들로 구성된 노조이며, 신명호 정책위원장은 항공우주연구원지부장도 함께 맡고 있다. 여기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소속 조합원도 포함돼 있다.

신 위원장은 성명을 낸 이유에 대해 “과학기술하는 입장에서 창피했다”며 “원자력 관련 학자들이 성명을 두 번이나 냈다. 거기에 들어 있는 417명의 교수들 명단을 봤더니 내가 잘 아는 교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신 위원장은 “너무 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며 “탈원전 정책이 추진된다고 당장 잘리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탈원전이 추진되면서 과제도 있을 수 있고, 원자력 안전 분야 측면에선 할 일이 더 많을텐데 학자들이 이런 성명을 내는 것은 과학기술연구자로 창피하다고 했더니 (공공연구노조) 위원장이 내자고 해서 빨리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공연구노조는 민주노총 산하이기 때문에 ‘탈핵’의 기조가 있기도 했으며, 대전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도 연대했다고 신 위원장은 전했다. 그는 “성명을 낸 이후 원자력연구원과 원자력안전기술원(킨스‧KINS) 쪽 있는 사람 중에서 속시원하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원자력 교수들의 탈핵‧탈원전 반대 주장에 대해 신 위원장은 “지금 정부만이 문제이고, 이전 정부가 원전 건설 뿐 아니라 폐기시설, 고속로, 재처리시설 등을 맘대로 결정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틀렸다”며 “이런 주장을 펴는 건 이들의 특혜의식(특권의식)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우리는 연구자금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기 때문에 (연구의 방향에) 공공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원자력계는 폐쇄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 작업이 중단된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사진=연합뉴스
▲ 작업이 중단된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사진=연합뉴스
값싸고 안전하며 깨끗한 에너지를 왜 말살하느냐는 원자력 교수들 주장의 ‘진정성’에 대해 신 위원장은 “학자로서 자신의 확신에 따라 반대한 학자들도 있겠지만, 그 뿐만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부여되는 연구과제 수가 떨어지고, 자신의 실험실 운영을 할 여력이 줄어 (교내) 영향력이 사라질 수 있는 점도 이런 반대목소리를 낸 이유가 아닐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당장 모두 없애겠다는 것도 아니라 단계적으로 줄이자는 것이고, 문제가 생길지 안생길지는 그 길을 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인데도 왜 가지도 못하게 하느냐”며 “417명 연서명해서 두 번 씩이나 성명 발표할 정도로 큰 조치가 벌어졌는가. 바뀐 것은 정부의 기조와 경향성만 바뀐 것 뿐인데, 이들은 그것을 꺾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 위원장은 “(이들의 명분과 논리는) 빈약하고 특혜의식이 느껴진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의심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신 위원장은 “우리 나라의 과학기술계 자체가 적폐일 수 있다”며 “과제를 만들거나 기획하고 평가하는 과정이 정상적인 절차대로 이뤄져온 것이 아니다. 정부부처가 예산을 주면서 과제를 만들고 적당히 하면서 돌아가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학기술의 민주적 기획과 민주적 통제가 모두 다 필요하다”며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단적인 한 사례가 이번 원자력계의 반발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신 위원장은 “정부 출연 연구원이나 대학, 나아가 대한민국의 학문연구의 근본적인 한계일 수 있으나 이는 새 정부가 척결해야 할 적폐”라고 강조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임시 중단에 이사회 저지에 이어 이사회결정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까지 내는 등 결사반대하고 있는 한수원 노조에 대해서도 신 위원장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가 회사의 손해를 입히는 법리적 문제에 대해 싸울 수 있지만, 그 싸움이 대중적 보편성을 띄지 않으면 작은 목표도 달성하기 어렵다”며 “이번 한수원 노조의 싸움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김병기 한수원노조 위원장은 19일 오후 한수원 이사회 결정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대구지법 경주지원에 낸 후 “천문학적 국고 손실이 발생하는 중차대한 사안을 날치기 이사회를 통해 강행하는 것을 본 원전 노동자들은 가슴이 콱 막힌다”며 “진영 논리에 갇힌 무조건적 선호와 극단적인 혐오 논리를 단호히 배격한다”고 주장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국가 미래 에너지정책은 비전문가에 의한 공론화가 아니라 전문가가 검토해 국민이 이해한 뒤 결정해야 하는 중요 사안”이라며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는 정부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신명호 공공연구노조 정책위원장은 “적어도 공기업이라면 공공성이나 공적인 임무가 가장 중요하다”며 “우리가 뭘 해야 하느냐. (국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공적인 임무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럴게 아니라 원자력 마피아라 불리는 원자력계의 병폐를 한수원노조가 척결하는데 앞장섰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신명호 전국공공연구노조 정책위원장(항공우주연구원지부장). 사진=본인제공.
▲ 신명호 전국공공연구노조 정책위원장(항공우주연구원지부장). 사진=본인제공.
탈원전 반대에 앞장서는 조선일보 등의 보도에 대해서도 신 위원장은 “한수원이나 원자력문화재단 같은 곳에서 과거부터 언론에 엄청나게 홍보해온 것으로 안다”며 “(언론과의 이런 관계가) 이것이 실질적이고, 새 정권에 타격을 주려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론으로서의 언론보도 기능이 있는 지에 대해 “탈원전이 정말 문제라면 전력수급문제, 사용후 핵연료, 가스발전소를 지을지 여부, 재생에너지가 가능할지 등을 따져야 하는 데도 이런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며 “오히려 추상적이거나 대중을 자극하는 얘기들 뿐이다. 분란만 일으키려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앞서 공공연구노조는 지난 13일 저녁 ‘“책임성 있는 에너지”운운하는 원자력 학계 교수들은 국민들에 대한 협박을 멈추라!’는 성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안전이며 공공기관 연구자들은 이를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연구노조는 “촛불시민들이 우리 과학기술자들에게 묻고 있다”며 ‘당신들은 누구를 위해 연구하고 있는가’라고 밝혔다. 공공연구노조는 “탈핵정책은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민주적 통제와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을 가름하는 시금석”이라며 “정말 교수로서의 학자적인 양심이 있다면 그리고 연구자로서의 최소한의 윤리의식을 갖고 있다면, ‘국가 경쟁력과 국민생활’을 운운하는 저열한 행동을 멈추고 원자력 산업과 학계의 적폐를 일소하고 거버넌스와 의사결정체계를 민주화하며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등 전국의 원자력 관련 공과 교수 417명이 지난 5일 국회 정론관에서 문재인정부 탈핵정책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등 전국의 원자력 관련 공과 교수 417명이 지난 5일 국회 정론관에서 문재인정부 탈핵정책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한수원노조가 지난 13일 신고리5·6기 건설 임시중단을 위한 이사회저지를 위해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한수원노조가 지난 13일 신고리5·6기 건설 임시중단을 위한 이사회저지를 위해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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