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사내 곳곳에서 페이스북 라이브로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쳤다가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김민식 PD를,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13일 오후 4시께. 미디어센터 로비 리셉션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김민식 님 방문하셨는데 올려보내 드릴까요?”

1개월간 자택 대기발령 상태이므로 김PD의 출입증은 정지된 상태입니다. 신분확인하고 그냥 올려 보내줘도 될텐데, 노조 상근 직원은 눈치없는 리셉션 직원이 원망스럽습니다. 잠시 후 여전히 듣는 사람 기분 좋아지는 유쾌한 얼굴과 목소리로 김민식 PD가 노조 사무실에 들어섭니다. 

▲ 김민식PD가 노조사무실에서 인사위원회에서 읽을 A4 54장 짜리 사유서와 김민식PD 페이스북에 친구들이 달아놓은 댓글들을 모은 70장 자료 뭉치를 들어보이며 밝게 웃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김민식PD가 노조사무실에서 인사위원회에서 읽을 A4 54장 짜리 사유서와 김민식PD 페이스북에 친구들이 달아놓은 댓글들을 모은 70장 자료 뭉치를 들어보이며 밝게 웃었습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는 ‘21년 간의 MBC 생활이 오늘로서 마지막이 될수도 있겠구나’ 라는 마음으로 인사위를 준비합니다. 중요한 회의가 끝날 때까지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기저귀를 차는, 영화 베테랑에 나오는 대기업 임원들처럼, 김민식 PD도 그렇게 준비했다고 합니다. (확인하진 못했습니다 ^^;) 

왜냐하면 김장겸 사장을 퇴진하라고 외쳤던 사유를 빽빽이 적은 사유서가 무려 54장이고, 그것을 읽는 데만 다섯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페이스북 라이브에 달린 페친들의 댓글을 모아 인쇄해 온 것도 70여장. 다섯 시간이 넘게 걸릴지도 모를 인사위원회를 페이스북 라이브로 중계하겠다는 페친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보조배터리를 하나 가져왔지만 동료에게 또 하나를 빌리고 그마저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 보이스레코더도 하나 빌립니다.

▲ 13일 오후 4시 40분께 인사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을 나서고 있는 김민식PD와 김연국 본부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3일 오후 4시 40분께 인사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을 나서고 있는 김민식PD와 김연국 본부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오늘 인사위원회로 21년 MBC 직장생활이 끝나게 될까...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오늘 인사위원회로 21년 MBC 직장생활이 끝나게 될까... 인사위 출석을 위해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유쾌한 모습을 잃을 틈이 없는 김민식PD.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모든 준비를 끝내고 두툼한 소명자료를 들고 노조 사무실을 나섭니다. 고 신영복 선생이 노동조합에 주신 글귀 ‘여럿이 함께’ 액자 앞에서 동료가 기념사진을 찍어 줍니다. 멀리 부당전보 갔던, 왕년에 힘 좀 썼던 동료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까지만 동행하며 “내가 가면 다큐가 격투기 될까봐 여기까지만 같이 갈게”하며 무거워질 뻔한 엘리베이터 안 공기를 가볍게 합니다.

인사위가 열릴 경영센터 건물 로비로 들어서기 전 페이스북 라이브는 시작됩니다. “안녕하세요. 김민식입니다. 자택대기 발령 중인 제가 오늘 MBC에 오게 됐습니다...”

▲ MBC 경영센터 1층 로비로 들어서니 동료 조합원들이 '김장겸은 물러나라' 손피켓을 들고 김민식PD를 응원하러 나와있습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MBC 경영센터 1층 로비로 들어서니 동료 조합원들이 '김장겸은 물러나라' 손피켓을 들고 김민식PD를 응원하러 나와있습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타언론사 사진기자들의 취재를 막아서는 청경도 나와있습니다. 14일까지 연장된 노동청의 특별근로감독 때문인지는 알수 없지만 지난 5년처럼 강압적으로 막진 않았습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타언론사 사진기자들의 취재를 막아서는 청경도 나와 있습니다. 14일까지 연장된 노동청의 특별근로감독 때문인지는 알수 없지만 지난 5년처럼 강압적으로 막진 않았습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로비에 들어서자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집니다. 드라마PD 시절 레드카펫에서 플래시 세례를 받던 배우들이 부러웠는데 소원성취입니다. 

“김민식 파이팅! 잘생겼다! 김민식! 김민식!” 근무시간 중임에도 격려하기 위해 로비에 줄지어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이 ‘김장겸은 물러나라’ 손피켓을 들고 외칩니다. 로비 이곳저곳에 설치된 수많은 CCTV들이 이 모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사위원회가 열리는 14층 임원실로 가는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인사과 직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4층은 사장과 임원이 아니면 올라갈 수 없습니다. 인사위는 대외비이며 촬영이 금지된다면서,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주지 않고 페이스북 라이브를 끄라고 합니다. 

▲ 인사위원회에 출석하는 처음 모습부터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전하겠다고 한 약속을 실천하는 김민식PD.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인사위원회에 출석하는 처음 모습부터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전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는 김민식PD.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인사과 직원과 언쟁하고 싶지 않은 김PD가 설명을 시작합니다. 

“저는 궁금합니다. MBC 사장님께서는 연일 뉴스데스크 앵커멘트를 통해서 본인의 경영행위에 대해서 국민의 재산인 공중파를 이용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고, 지금 벌어지는 방송정상화를 위한 많은 움직임들은 언론장악이라고 얘기하시는 분이, 제가 저의 휴대폰에서 페북 라이브로 저의 입장을 얘기할 순 없는 건가요? 어떤 근거로 제가 휴대폰을 꺼야 하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저는, 김장겸 사장을 물러가라고 했고 회사는 그런 저에게 공영방송 사장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인사위를 열어 부른 것입니다. 저는 김장겸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던 이유를 인사위에서 정확하게 소명하기 위해 왔습니다. 이것은 인사위 개최 통보서입니다. '심의대상자는 회사내 불특정 장소에서 수십차례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고성을 질러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대표이사에 대하여 근거없이 물러나라고 하고 회사의 전체적인 지휘체계를 훼손하고 직장질서를 문란하게 하였음.' 

MBC는 공영방송입니다. 신입사원시절부터 선배들은 제가 미스컷 하나 붙이거나 인서트 컷 하나 잘못 넣으면 호되게 혼내며 말했습니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낭비하지 마라. MBC의 주인은 국민이고 시청자입니다.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만약 제가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공영방송사의 사장인 김장겸 사장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면, 이는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 시청자 여러분께 제가 죄를 짓고 있는 겁니다. 제게 잘못이 있다면 인사위원회에서 위원들과 함께 국민들께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소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회사에서는 저의 인사위 출석을 막고 있습니다. 임원전용 엘리베이터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지금 여기가 인사위도 아니지 않습니까? 심지어 여기는 MBC 로비입니다. 왜 여기서 제가 핸드폰을 꺼야 됩니까? 근거가 뭡니까? 저는 저의 근거를 말씀 드렸습니다.”

잠깐의 대치가 끝나고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김PD는 페북라이브를 우선 끄고 인사위원회에 올라가 다시 페북라이브를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방송을 끄기 전 김PD는 동료들과 다시 세 번 힘차게 외쳤습니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 '김장겸은 물러가라!'를 세 번 외치고 일단 페이스북 라이브는 중단됐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김장겸은 물러가라!'를 세 번 외치고 일단 페이스북 라이브는 중단됐습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노조 사무국장, 담당 부서장과 함께 인사위원회가 열리는 14층 임원실로 가는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김민식 PD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노조 사무국장, 담당 부서장과 함께 인사위원회가 열리는 14층 임원실로 가는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김민식 PD.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인사위에 올라간 지 한 시간이 지난 6시께 김PD는 내려왔습니다. 인사위원인 백종문 부사장 등도 칼퇴근을 좋아하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인사위원회는 30분쯤 계속되던 김PD의 소명서 낭독을 중지시키고 다시 인사위원회 날짜를 통보하겠다며 정회했다고 합니다.  내려와서 동료들 앞에선 김민식 PD는 다시 페이스북 라이브를 시작합니다. 옆에 서 있던 영상취재기자협회장이 “이번에는 전문가의 손길로...”하며 김 PD의 스마트폰을 슬쩍 가져갑니다. MBC 대표 로맨틱코메디 드라마PD답게 유쾌함을 유지하던 그가 잠깐 울음을 삼키며 말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냐면요, 제가 올라갈 때 앞에 서 있는 사람들 (동료 조합원들)봤지 않습니까? 아까 근무 중에 이렇게 나와서 저 로비에서 올라가는 거.... 저는 올라가서 여러분들이 지난 5년간 저기 임원실, 사장실에 앉아있는 그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그 얘기를 여러분을 대신해서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저의 질문을, 소명을 막았습니다. 그러고나서 끝끝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밥 먹을 때가 됐으니까 그만 줄이고 가라는 겁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불손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하나하나 다 말씀을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 "저는 올라가서 여러분들이 지난 5년간 저기 임원실, 사장실에 앉아있는 그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그 얘기를 여러분을 대신해서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저의 질문을, 소명을 막았습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저는 올라가서 여러분들이 지난 5년간 저기 임원실, 사장실에 앉아있는 그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그 얘기를 여러분을 대신해서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저의 질문을, 소명을 막았습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김민식 PD의 발언을 듣고 있던 동료 조합원들의 눈가도 촉촉히...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김민식 PD의 발언을 듣고 있던 동료 조합원들의 눈가도 촉촉히...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다시 평정심을 찾은 김PD는 “저는 오늘 여기 올 때 오늘이 내 MBC 21년 근무의 마지막 날이구나. 이 인사위를 끝으로 해고가 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정회니까 해고는 며칠 미뤄진 것 같습니다. 페북 라이브로 못해서 죄송하구요. 일단 정회니까...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다음 회를 기대해 주십시오...” 하고 프레임 밖으로 사라졌던 그는 다시 불쑥 나타나 “자 우리 다 같이 외쳐봅시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는 것으로 페이스북 라이브를 일단 종료했습니다. 

▲ ‘웹툰’으로 회사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해고당했다가 1년 4개월 만에 해고무효소송에서 최종 승소해 복직한 권성민PD(왼쪽)가 김민식PD의 농담에 활짝 웃습니다. 권PD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정직과 유배를 거치는 동안, 답답한 마음에 이런저런 일을 벌일 때 마다 대부분 동료들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을 먼저 말했지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뭐 어떠냐'고 말해준 사람은 민식선배 뿐이었다. 수원에 유배되어 있던 내게 점심 식사를 사주기 위해 수원까지 찾아와 한시간 밥을 먹고 다시 서울로 올라간 것도 민식선배였다..."라고 적었습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웹툰’으로 회사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해고당했다가 1년 4개월 만에 해고무효소송에서 최종 승소해 복직한 권성민PD(왼쪽)가 김민식PD의 농담에 활짝 웃습니다. 권PD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정직과 유배를 거치는 동안, 답답한 마음에 이런저런 일을 벌일 때 마다 대부분 동료들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을 먼저 말했지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뭐 어떠냐'고 말해준 사람은 민식선배 뿐이었다. 수원에 유배되어 있던 내게 점심 식사를 사주기 위해 수원까지 찾아와 한시간 밥을 먹고 다시 서울로 올라간 것도 민식선배였다..."라고 적었습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일단 정회니까 해고는 며칠 미뤄진 것 같습니다. 일단 정회니까...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다음 회를 기대해 주십시오. 자, 우리 다 같이 외쳐봅시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일단 정회니까 해고는 며칠 미뤄진 것 같습니다. 일단 정회니까...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다음 회를 기대해 주십시오. 자, 우리 다 같이 외쳐봅시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