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통일·교육부총리를 지낸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가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유로 KBS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 취소 통보를 받아 KBS 내 ‘블랙리스트’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강기석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교수의 출연 취소 통보 소식을 전하면서 알려졌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KBS본부)는 직접 한 교수를 인터뷰한 영상을 10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본부 회의실에서 열릴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한다.

강 전 편집국장과 KBS본부 등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한 교수는 자신의 회고록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를 주제로 지난 5일 이주향 수원대 교수가 진행하는 주말 KBS 1라디오 프로그램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방송을 위해 출발하려던 한 교수는 담당 프로그램 PD로부터 출연 취소 통보를 받게 된다. 담당 국장이 제작진에 “이 책은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인 인문학이 아니다” “현 대통령을 옹호하는 회고록으로 정치적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는 것.

강 전 편집국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생의 회고록은 1936년에 태어나 서울대와 에모리대학에서 공부하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한 후 15년여 통일 부총리(김영삼 정부), 방통대 총장, 교육 부총리(김대중 정부), 적십자사 총재(노무현 정부) 등 공직을 지낸 우리 사회 대표적 지식인의 삶의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강 전 편집국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은 회고록 맨 마지막 부분 에필로그에서 아주 조금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며 “한 선생은 여기에서 촛불혁명의 의의를 설명하고, 이 촛불혁명의 결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통일·교육부총리를 지낸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가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유로 KBS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 취소 통보를 받아 KBS 내 ‘블랙리스트’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통일·교육부총리를 지낸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가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유로 KBS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 취소 통보를 받아 KBS 내 ‘블랙리스트’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KBS 1라디오의 담당 국장은 이제원 국장으로, 그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된 직후인 지난 3월 자신의 페이스북 프로필을 ‘20대 국회’, ‘헌법재판소’라고 쓰인 근조 리본으로 교체하는 등 탄핵에 반대하는 뜻을 표현해왔던 인사다.

그는 ‘5·18 북한군 침투설’과 같은 근거 없는 ‘가짜뉴스’를 페이스북에 게시하거나 극우적 성향 인사들을 패널로 섭외할 것을 지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의 KBS 출연이 취소되거나 보류되는, 이른바 ‘KBS 블랙리스트 논란’은 유독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끊이지 않았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문재인 대통령을 대선 후보 시절 지지했다가 출연 보류 통보를 받았고, 박근혜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했던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도 KBS 블랙리스트 논란에 휩싸였다.

한편, 언론노조 KBS본부는 한 교수를 인터뷰한 영상을 10일 기자회견장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미디어오늘은 한 교수와 이 국장의 입장을 물으려 했으나 두 사람은 연락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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