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는 장인이다. 양질의 뉴스를 오랜 기간 생산해왔다. 물론 손석희만큼, 혹은 손석희보다 유능한 언론인은 많다. 다만 손석희는 10년 넘게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로 꼽히고 있다. 특히 최근 대통령을 시민들이 직접 갈아치우면서 그는 더 주목받게 됐다. 미디어비평지에서 일하는 저자가 손석희를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출간된 ‘손석희 저널리즘’은 손석희의 궤적을 훑으며 그가 한국 언론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 살피고 있다. 손석희의 시점에서 한국 현실을 바라볼 수 있고, 특히 언론인이 느낀 부끄러움과 척박한 언론환경이 맞닿는 부분을 분석했다.

손석희가 보여준 것은 크게 두 가지다. 그는 “공평하게 공격적”이었고, 언론인으로서 얻은 명성을 이용해 정치권으로 가는 등 사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많은 언론사 종사자들이 지키지 않는 직업윤리다. 또 하나는 손석희가 JTBC에서 한 시도다. 맥락 저널리즘을 통해 저널리즘의 효능감을 올린 동시에 시청률 상승에도 성공했다.

▲ 광화문 광장에 서있는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 사진=JTBC
▲ 광화문 광장에 서있는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 사진=JTBC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지났다. 한국언론사(史)를 손석희로 살펴보기에 크게 무리는 없다. 손석희는 1984년 ‘신군부 부역방송’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리고 있는~”(1987년 2월15일자 리포트) 그 역시 ‘땡전뉴스’를 피할 수 없었다. 손석희라고 특별한 DNA를 타고난 사람은 아니다.

MBC에 민주노조가 생겼고, 손석희도 공영방송 투쟁에 합류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에서, 투쟁하다 끌려가 파란 수의를 입은 손석희 사진이 화제가 됐다. 손석희를 비롯해 많은 언론인이 현장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공정보도를 위해선 정파저널리즘이 일정부분 필요했다. 오랜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언론은 권력의 수단이었고, 이에 온몸으로 맞서는 게 언론인의 필수요소가 됐다.

▲ 1992년 대선을 앞두고 9월부터 진행된 52일간 파업 이후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된 손석희.
▲ 1992년 대선을 앞두고 9월부터 진행된 52일간 파업 이후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된 손석희.

1997년 이후 가장 큰 권력이 국가에서 시장으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 미디어산업은 점차 국가통제 시스템에서 자본통제 시스템으로 이동 중이다. 기술 발전으로 신문과 뉴스 이외에도 다양한 콘텐츠가 유통되고 있다. 일부 신문사와 방송을 장악한다고 해도 여론을 관리하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한겨레 신뢰도 하락의 주 요인도 정파저널리즘이다.

공정보도를 지키기 위한 더 효과적인 수단이 과거엔 정파저널리즘이었고 이제는 상업저널리즘이 아닐까 싶다. 한국사회는 이 과도기를 거치고 있고, 중심에 손석희가 있다. 물론 손석희가 과거에 정파적이었고, 지금은 상업적이라는 건 아니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저자의 표현대로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으려 ‘경계인’”으로 살았다. 다만 손석희로 대변되는 양질의 뉴스를 보장하기 위해 정파저널리즘이 한계를 다했고, 정권이 언론을 장악한다고 국민의식을 통제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영화·드라마·광고·뉴스 각종 뉴미디어 콘텐츠 등 미디어산업 전체를 놓고 볼 때 보수성향의 신문인 중앙일보는 매우 협소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중앙미디어네트워크 그룹은 특수관계에 있는 CJ 등과 의식산업 전반을 잠식해가고 있다. 실용적이라는 평가는 받지만 여하간 조선일보 때문에 최고의 영향력도 갖지 못한다. 홍석현은 자신이 장악하지 못했던 저널리즘 분야의 최고 장인인 손석희를 삼고초려해 민영방송 보도부문 사장 겸 메인 앵커라는 자리를 맡게 했다.

다른 종편이 상업저널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선정성에만 열을 올릴 때 손석희를 데려온 건 기업가로서 전략적 선택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손석희는 MBC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통제와 간섭을 배제하고 장인에게 전권을 줄 수 있는 것도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관점에서는 설명이 가능하다.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JTBC는 손석희로 인해 주목받는 방송사가 됐고, 그 과정에서 손석희는 저널리즘의 정석과 혁신을 부족함 없이 보여줬다.

▲ 손석희 저널리즘/ 정철운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 손석희 저널리즘/ 정철운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손석희가 종편에 갈 때 다수는 그가 실패하길 바랐던 것 같다. ‘손석희라고 별 수 있겠어?’ 그는 정파저널리즘의 상징 중 하나인 ‘조중동 종편’ 프레임을 깼다. 삼성 백혈병 문제를 비판하고, 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에서 이재용을 비판하는 걸 확인하는 과정은 또 하나의 뉴스였다. ‘홍석현 대망론’이 흘러나오자 손석희는 “우리는 특정인·특정집단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며 그만의 스토리를 이어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공적 영역이지만 사적 영역이기도 합니다. 광고료로 지탱하면서도 그 광고주들을 비판한다든가, 동시에 언론 자신의 존립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치권력을 비판한다는 것은 그 정도에 따라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3월20일 뉴스룸 앵커브리핑 일부) 손석희가 손석희일 수 있게 만든 건 삼성광고와 박근혜의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한 재벌가 경영진의 뚝심이었다.

손석희가 JTBC에서 한 실험 중 관심이 가는 건 맥락저널리즘이다. 기존 뉴스시장은 지상파 중심이었다. JTBC 등 종편과 비교하면 그들은 상대적으로 탄탄한 자원을 가졌고, 1분30초짜리 압축적인 리포트에 특화돼있었다. 이런 뉴스 시장에서 3분 이상 길게는 10분 가까이 한 사안에 대해서 해설·비평하는 맥락저널리즘은 한국 뉴스 시장이 ‘가지 않은 길’이었다.

모바일 중심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속도에서 맥락저널리즘은 지루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부터 한 사안을 집요하게 물어뜯는 그의 스타일은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국정농단 같이 한국사회를 바꿔놓는 거대한 사안에서 빛을 봤다. 객관과 중립이 우선됐던 언론시장은 변하고 있다.

손석희는 상업저널리즘과 권력이 시도하는 ‘언론관리’ 사이로 난 틈을 파고들었다. 현재로선 그곳에 우리가 교과서에서 본 저널리즘이 숨어있다. 공정보도를 위한 언론노동자들의 투쟁방향도 변해야 한다. 손석희가 떠날 JTBC엔 저자의 바람대로 민주노조가 들어서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이제 손석희 이후를 고민할 때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