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개혁 공약 실천을 위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막지 못했던 노동의 유연화와 비정규직 확산 방지를 이번에 실현시킬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고 고용현안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상황판에는 비정규직을 포함해 저임금 노동자, 임금격차, 임금상승률 등 일자리 관련 지표 18개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그만큼 청와대 안에서부터 실시간으로 가까이 접하면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일자리 공약에는 △5년 간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일주일 노동시간 52시간으로 제한 △비정규직 임금차별 없애고 중소기업 지원으로 일자리 창출 △스타트업·창업 생태계 조성 등이 포함돼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행보는 그동안 정부가 기간제노동자에 초점을 맞춰 비정규직 해법을 내놓았던 것에서 벗어나, 파견 등 간접고용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 해법에 주목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12일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직원들과 사진을 찍고있다. 사진=인천공항공사지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12일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직원들과 사진을 찍고있다. 사진=인천공항공사지부 제공
노무현의 숙제, 비정규직 확산을 막아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정책 추진 1호로 내건 비정규직 문제 해법은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히는 노동의 유연화와 맞닿아있다.

참여정부 당시 시행된 2006년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 보호라는 취지와는 다르게 결과적으로 파견과 용역 등 ‘다채로운’ 비정규직을 양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참여정부 말 홈에버 등을 운영하는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 등이 당시 시행된 비정규직법의 문제점을 드러내주는 사례로 꼽힌다. 비정규직 사원에 대해 2년 넘게 고용하면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바꿔야 하지만, 이를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아예 비정규직을 해고해 버리거나 외주업체로 업무를 넘겨버리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초단기계약과 무기계약직 등 다양한 비정규직 형태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노동계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평행선을 달렸다. 임기 초반인 2003년 6월 철도노조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철도노조는 정부가 ‘4.20 노정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철도청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2003년 6월 전면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철도노조 파업을 불법파업이라고 규정, 공권력 투입을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공권력이 투입됐다. 노동계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철도노조와 충분히 논의한 이후 대안을 모색하기로 한 합의를 무시했기 때문에 사실상 파업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양측 입장은 좁혀지지 않았고, 국가는 전국철도노동조합을 상대로 철도청 민영화 반대 파업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제기했다.

참여정부와 노동계와의 불화는 전교조와의 악연으로도 이어진다. 노무현 정권은 2003년 당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을 반대하며 집단 연가투쟁을 주도해 업무를 방해했다며 원영만 전교조 위원장을 구속수감해 노동계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 2007년1월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 2007년1월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노동계에 대한 아쉬움은 노무현 전 대통령 쪽도 마찬가지였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부터 서거 직전까지 작성했던 ‘진보의 미래’에서 “진보주의 정치 세력의 한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역량의 한계와 역량을 초과하는 의식, 이념의 과잉, 노동환경의 변화, 그리고 이기주의, 중도 진보주의 정치 세력의 분열과 변절, 지역대결.”

진보 시민사회진영은 임기 내내 이어진 불화 끝에 참여정부가 노동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정규직법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진보의 미래’라는 저서에서 노동 정책이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비정규직 양산을 규제하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였다고 밝혔다. 당시로서는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 양산을 애초에 막을 해법이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 용역, 편법 그거를 규제해 보려고, 편법 용역과 용역 파견이 구별이 어려워요. 법무부하고 노동부가 그거 구별할 수 없다고 장문의 책 한 권으로 보고서를 써서 올리는데 대통령이 그걸 보고 어쩌겠어요?(웃음) 우리나라에 뭐 노동법 한다는 내로라하는 사람들도 거기 데려다 놓고 그 문제 딱 맡기면 해결을 못해요. (...) 소위 탈법적 용역, 편법적 용역 이걸 자르지 못하면 비정규직 별짓을 다해도 이건 성공 못한다. (260쪽)”

“이랜드가 결국 아웃소싱이 합법인가 아닌가로 논란이 되었잖아요? 아웃소싱을 잘라 버릴 수 있으면 노동자 편을 들어줄 수도 있는데, 아웃소싱을 우리가 불법이라고 규정해서 잘라내지를 못하니까 정부의 칼이 현장에서 파업하는 사람들한테 겨눠 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 이랜드 사건 때 ‘아웃소싱 저거 불법용역으로 볼 수 없나?’ 그러니까 뭐 아무도 그럴 수 있다는 사람이 없는데 나라고 어쩌겠어요. 진보학자면 어쩌는데요? 진보학자가 와서 한번 해봐라...(261쪽)”

2017년 현재, 노무현의 고민을 풀 수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이러한 고민을 정책 1호로 풀겠다며 두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현재,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사회 양극화 문제가 참여정부 시절보다 더 크게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지점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의 불법파견을 직접 겨냥한 공약을 내걸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공약으로 공공부문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비정규직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일정 규모 이상의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대기업에 ‘비정규직 고용 상한 비율’을 제시하고 이를 초과하는 기업에 비정규직 고용부담금을 부과한다는 계획도 있다. 비정규직의 사용사유를 제한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이러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참여정부 당시 비정규직보호법이 낳았던 문제를 직접 겨냥하고 민간 부문에서도 이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문 대통령이 파견과 도급 등 비정규직 문제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쓸 수 있는 해법으로 노동계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원청사업주에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직접고용원칙을 확립하며 도급과 파견의 구분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정책의견·정치행동 그룹인 ‘더좋은미래’와 독립 민간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대선 핵심 아젠다 연속토론회 종합 보고서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법과 우선개선 과제에 대한 제언을 내놓았다.

이 소장은 비정규직을 한없이 늘려놓고 나중에 줄여가는 방식인 ‘출구’ 규제전략에서 벗어나, 처음 계약 때부터 비정규직을 원천적으로 줄여나가는 ‘입구’ 규제전략으로 선회하라는 제안했다. 일단 이 방향은 현재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대책을 위해 비정규직 양산 자체를 막겠다며 내놓은 여러 정책들의 방향과 일치한다.

이외에도 구체적으로 이 소장은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우선 과제로 꼽고, 근로기준법에 상시적 업무에 대해서는 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간접고용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을 제안했다. 기간제 뿐만 아니라 간접고용과 특수고용을 포괄하는 모든 비정규직 고용형태 전반에 사용 사유를 분명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직접고용 원칙을 확립하고 업체를 변경할 때 고용승계를 보장하도록 하며 도급과 파견의 구분을 법제화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보험 확충도 전체 노동자 대비 비정규직 비율이 44.3%에 달하는 현실(한국비정규노동센터 추산)에서 정규직에 비해 크게 낮은 비정규직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으로 꼽힌다.

합의 통한 일자리 모델 끌어내야

정부의 의지는 굳지만 당장의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여러 언론들의 지면에서 등장하는 ‘재계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대책에 대한 우려섞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입법 과정에서 재계의 반발을 어떻게 넘느냐도 관건이다.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재계와 노동계의 시선이 다르다는 점도 해법을 어렵게 만든다. 재계는 무기계약직과 하도급 사원 등을 정규직으로 보고 있지만, 노동계에서는 이들을 비정규직으로 분류한다. 비정규직 대책에 포함되는 범위 자체를 다르게 바라보는 셈이다.

비정규직이 이미 고용 형태로 깊숙이 자리잡은 조선산업 등 일부 업계에서 비정규직을 어떤 방식으로 정규직화할지도 현재로선 뚜렷한 해법이 없다. 

대표적으로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역시 복잡하다. 공항 업무에 다양하게 섞여 근무 중인 여러 비정규직 중 누구를 어떻게 정규직화할 것인지 해법을 마련하는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화 과정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해법의 가이드라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재계에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인건비가 늘어날 경우 신입 사원채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미 있는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으로 돌리고, 인천공항공사처럼 기존에 있던 정규직과 완전 동일한 형태는 아니더라도 미래에 발전 가능성이 보이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안정적인 (일자리) 모델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자리 문제를 포함한 여러 국정과제 관련) 비전을 정권 초반기에 빨리 설정해서 개별 과제들과 비전을 연결지어 국민들에게 설득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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