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는 내각의 수반으로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을 총괄한다. 정부실패의 중요한 책임이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부·여당이 민주적 책임을 져야 하고 황교안 국무총리 역시 정치적 공범이다. 그런 그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아이러니 상황에서 23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고 대선 출마를 묻는 기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지금은 오직 그 생각(국정 안정)뿐입니다”
“지금은 여러 생각할(대통령 출마) 상황이 아니다”

우선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흉내 낸 것 자체가 비판지점이다. 기자회견 내용도 시민들이 기대한 답변은 좀 달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구체적인 사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자신의 직무한계에 대한 설명, 대선불출마선언 등이 필요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현직 장관이 구속되는 혼란이 벌어졌는데 이에 대한 사과가 없었던 것도 무책임한 모습이다. 황 권한대행은 지난 22일에도 취업·결혼 등 문제를 두고 청년들과 소통하는 이미지를 만들려 했는데 이는 전형적인 대권주자의 행보다.

원래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일 90일 전까지 공무원직을 그만둬야 한다. 다수 분석대로 탄핵이 현재 2월말 인용된다고 가정하면 대선은 4월말로 결정된다. 탄핵 60일 이내로 대선을 치러야하기 때문이다. 황 권한대행이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선 1월말에는 해당 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정치적 부담이 큰 행동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궐선거의 경우는 다르다. 30일 이전까지만 직을 내려놓으면 된다. 즉 대통령 탄핵 결정이 나도 30일의 시간이 황 권한대행에게 생긴다. 

황 권한대행은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을지 모른다. 지난 23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범여권진영의 대표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지지율은 19.8%로 오히려 추락했다. 범여권진영 지지율 2위가 황 권한대행이다. 그는 4.6%의 지지율을 얻어 한 때 야권진영 유력 후보였던 박원순 서울시장(3.4%)보다 높은 인기를 보였다. 에스티아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이 대선레이스를 중도 포기할 것이라는 여론이 45.5%나 나왔다. 만약 반기문과 박근혜가 아웃되면 황교안 차례다.

황 권한대행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선거 공정성’ 시비가 벌어질 것이다. 대통령 탄핵 이후 60일간 선거관리를 황 권한대행이 물러난 박근혜 정부에서 주도한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댓글을 다는 등 선거에 개입한 결과 탄생했다. 이에 대해 속 시원한 처벌이 없었다. 재발가능성이 남아있다.

1961년 5·16쿠데타로 권좌에 침투한 뒤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맡으며 실세로 떠오르자 1962년 3월 윤보선 4대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박정희가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았고, 박정희 대통령 직무대행이 1963년 대통령 선거를 관리했다. 폭력으로 권력을 차지한 권력에게 선거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었다. 야당에서는 ‘선거 보이콧’ 주장까지 나왔다. 현 상황과 일부차이는 있지만 논란의 성격은 비슷하다.

▲ 2016년 12월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 가운데)이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 하고 있다. 오른쪽은 유일호 경제부총리. 사진=포커스뉴스

황 권한대행이 자리를 비우면 절차에 따라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황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유 부총리 역시 황 권한대행처럼 박근혜가 임명한 사람이다. 또한 국민에게 검증받거나 선출을 통해 정당성을 얻은 지도자가 아니다.

황 권한대행의 권한남용 논란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과도한 의전을 요구해 취임 직후부터 문제를 만들었고,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으며 '대통령 행세'에 나섰다. 탄핵가결당한 대통령의 정책을 유지하겠다며 본인이 직접 한중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심지어 23일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 바른정당이 “민생 현안에만 집중하라”고 비판하자 장제원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바른정당이 이렇게 대응할 거냐”고 항의까지 했다. 권한을 남용한 것도 문제지만 그가 행정수반과 국회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준 사례로 남을 것이다.

공안검사 출신 황교안의 민낯이 드러난 행위도 있다. 대통령 훈령 개정을 통해 공식행사나 회의에서 순국선열·호국영령 외 묵념을 금지시켰다. 세월호 참사나 광주민주화운동 등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위를 막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황 권한대행은 쪽방촌·임대아파트 등을 돌아다니다 “대통령 코스프레 하지말라”고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의 대통령 행세는 이처럼 국정혼란을 초래한다. 황 권한대행이 할 일은 정국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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