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촛불시위에는 회의론이 따라다녔다. 대규모 촛불시위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잇속을 챙기는데 지장이 없었고, 이후에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다. 수많은 이들이 매주 모였지만 뭐가 바뀌었냐는 지적에 반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2016년 촛불시위는 어떨까. 이번 촛불시위 정국의 특징은 시민들이 대의민주주의 틀을 제대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항의의 대상이 대통령과 정부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회와 정당, 국회의원 개인, 언론 등으로 확대됐다. 광장에서 모이는 촛불시위뿐 아니라 국회의원에게 직접 항의를 하고, 탄핵요청을 한다.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은 취재현장에서 쫓겨난다.

▲ 12월3일 광화문 앞에 모인 10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과 횃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모습. 
하루빨리 대통령을 사퇴시켜야 하는 판에 여당과 야당은 꾸물거렸고 이에 시민들은 직접 국회의원에게 항의차원의 카카오톡을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국회의원들은 하루에도 수천, 수만 건씩 오는 항의 문자와 전화에 업무가 마비됐다. “탄핵정국을 이용해 야합을 벌였다”고 비판 받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로 인해 연락처를 바꿔야만했다.

집회 현장에서도 국회의원들이 질책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다. 광주 촛불집회에 참가한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의 경우 탄핵 표결 연기에 실망한 주최 측이 연설을 제한해 짧은 인사말로 대신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도 대구에서 “안철수 빠져라”는 등 항의를 들었다. 광화문 시위에 참여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어떻게 여기에 나올 수 있나”와 같은 항의를 들었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왜 탄핵을 반대 했나”라는 질문을 들었다고 전했다.

자신의 지역구 의원에게 직접 탄핵을 청원할 수 있는 사이트도 탄생했다. ‘박근핵닷컴’은 거주지역의 해당 국회의원 이메일과 연락처를 알 수 있고, 사이트를 통해 간편하게 탄핵 청원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사이트를 통해 접수된 탄핵 요청에 국회의원들은 ‘예/아니오’버튼을 눌러 탄핵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다. 4일 오전까지 무려 65만 명의 시민이 탄핵을 청원한 상태다. ‘박근핵닷컴’은 3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박근핵닷컴.
집회의 장소도 광화문/시청 일대에서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3일 오후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주최로 열린 새누리당 해체를 요구하는 집회에는 2500여명이 모였다. 시민들은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의 집회가 끝나고 전국경제인연합회와 KBS를 항의 방문다. 여러 집회현장에선 JTBC 외에는 단독 현장중계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시민들은 ‘#그런데최순실은?’ 해시태그 운동으로 언론의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이끌기도 했다.

시민들은 정치혐오보다 정치를 활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최근 시민들의 행동을 두고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으려면 적법한 입법 권력을 활용해 탄핵해야 한다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결과”라고 지적하며 “촛불집회가 광장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로의 변화로 퍼져나가려면 정치를 제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박상훈 대표는 “2008년 촛불집회가 촛불만 들고 있었다면, 2016년 촛불집회에서는 한 손에는 촛불을, 한 손에는 정치라는 무기를 들고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도 최근 시민들의 모습을 두고 “단순한 정치 불신을 넘어서 기성정치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며 적극적인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른 무엇보다 이제는 더 이상 정치를 이렇게 놔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가장 강렬한 것 같다”고 전했다.

▲ 12월3일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시민들이 '새누리당'이 적힌 대형현수막을 찢어버리고 있다.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2008년 촛불시위의 정서가 ‘정치혐오’였다면 ‘2016년의 정서는 ‘정치 활용’이다. 시민들의 무기는 스마트폰과 SNS다. 시민들은 이번 기회야말로 제대로 된 정치와 국회의원을 선별하고, 제대로 된 언론을 선별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만약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이전처럼 그냥 넘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이 이러한 시민들의 변화된 생각과 행동에 부응해야할 때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