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받아보는 것뿐 아니라 극비리에 진행되는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맞춰 대통령의 옷을 챙기고, 비선 모임에서 대통령 보고자료까지 검토하는 등 국정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한 내용이 쏟아지고 있다.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단순한 도움을 준 게 아니라 국정에 깊숙히 개입하고 대통령을 조정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최씨가 ‘도대체 무슨 존재이길래’ 청와대를 좌지우지하고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무법천지의 행각을 벌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이유로 최순실씨의 국정을 농단하는 행위를 용인하고 묵인했는지 최씨와의 관계를 명쾌하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최순실씨라는 인물을 알기 위해선 그의 아버지 최태민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와의 관계가 아버지 최태민으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이다.

아버지 최태민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있다. 시기를 특정할 순 없지만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최태민 관련 자료'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보고서는 최태민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활용해 정치, 경제, 언론계에 영향을 미친 내용을 적나라하게 적고 있는데 최태민이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을 팔아 벌인 행각은 현재 최순실씨가 벌인 행각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보고서는 최태민의 신원사항, 비리사실, 구체적 비리내용 등의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태민은 황해도가 원적이고 본적은 경남 양산군이다. 보고서가 작성된 시점에 최태민의 직업은 대한구국봉사단 총재로 돼 있다.

보고서에는 최태민이 7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선녀가 지었다는 아명 ‘최도원’, 월남 후 개명한 이름으로 경찰, 육군 및 해병대 비공식 문관으로 재직할 때 사용했던 ‘최상훈’, 부산에 거주할 때 사용한 ‘최봉수’, 법명인 ‘최퇴운’, 천주교 영세시 받은 ‘공해남’, "제사에 의해 개명하였다고 자칭, 영혼합일법 등 사이비 행각시 사용"했다는 ‘방민’,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취임시 개명했던 최태민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태민은 최상훈이란 이름으로 강원도경과 대전경찰서, 인천경찰서에 재직했고, 육군 제1사단 헌병대와 해병대에서 비공식 문관을 지냈다.

1954년 최퇴운이란 이름으로 승려를 했고, 1955년 최태민의 5번째 처인 임선이씨와 재결합을 한 것으로 나온다. 임선이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80주년 생일잔치 때 노래를 불러 축하해줬다는 최순실씨의 어머니다.

최태민은 1969년 천주교 중림성당에서 '공해남'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리고 1971년 불교 , 기독교, 천도교를 복합, 창업한 영세계의 교리인 '영혼합일법'을 주장한 것으로 나온다. 보고서를 작성한 주체는 이를 '사이비 종교 행각'이라고 적었다. 최태민은 ‘방민’이란 이름으로 "독경 및 안찰기도로 환자치유"를 했다고 한다.

또한 “1973년 5월 대전시 현대예식장에서 영세계 칙사를 자칭, 영혼합일법 설교를 하고, 서울 등지의 건물주에게 자신이 칙사 혹은 태자마마라고 자칭”해 해당 건물에 입주했다고 나온다.

특히 1975년 3월 "박근혜에게 '꿈에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양을 도와주라고 하였다'는 요지의 서신을 발송 끝에 3.6 박근혜와의 접근을 성취"했다는 대목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초 접촉한 과정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고서는 “1975년 4월 10일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취임 계기로 사이비 교파인 예정종합총회장 조모 목사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것으로 최태민의 신원 사항이 끝난다.

보고서의 '비리사실'에는 최태민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떻게 접근해 이득을 취했는지에 대한 과정과 비위 내용들이 상세히 담겨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태민은 영혼합일법(일종의 최면술) 등 사이비 종교 행각으로 전전하던 75. 2 말경 박근혜에게 3차에 걸쳐 꿈에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는 현몽이 있었다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하여"라고 나온다.

그러면서 "75. 3. 6 박근혜와 접견, 다시 교제의 난맥상을 개탄하면서 구국선교를 역설 끝에 75. 4. 29 박근혜의 후원으로 자신의 심복 및 사이비 종교인 중심으로 대한구국선교단을 설립하고 총재로 취임하여 구국선교를 빙자 매사 박근혜 명의를 매명하여 이권개입 및 불투명한 거액금품징수 등 이권단체화로 치부"했다고 한다.

최태민이 박근혜 대통령 뒤에서 비선 실세로 행세했다는 대목도 눈에 띤다.

보고서에 따르면 "78. 2.22 봉사단을 사단법인으로 개편 발족 박근혜가 총재로 취임 이래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비공식 고문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썼다. 현재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고 청와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외교 문제까지 개입했다는 내용과 비슷하다.

최태민이 봉사단의 운영비를 조달한 과정도 미르-K재단 설립 과정과 흡사하다.

보고서를 보면 "78. 7. 14 운영비 조달목적으로 #### (주) 회장 최모 등 10명의 실업인을 운영위원으로 위촉, 운영위원회를 발족한 이래 계속 증원하여 79. 10 에는 국내 재벌급 실업인을 거의 망라한 60명 선에 육박, 1인당 입단 찬조비 2,000~5000만원에다 매월 200만원씩 운영자금을 조달"했다고 나온다.

또한 “장학기금과 운영기금 및 기타행사 지원비 등 명목으로 수천만원씩 개별적으로 갹출”한 것으로 나오는데 "운영위 멤버가 아닌 기업체에 대해서도 박근혜를 매명, 동일명목으로 수천만원씩 갹출"했다고 적었다.

이어 "갹출한 막대한 자금과 행정기관의 지원을 바탕으로 업무기능이 유사한 정부육성단체인 부인회, 주부크럽(클럽), 어머니회 등의 조직을 잠식하는 등 무리한 조직확대와 사업추진으로 각종 마찰과 부작용을 야기하면서 각 시 도 리 동에 이르기까지 조직을 확대, 300만명 단원을 확보"했다고 한다.

최순실씨가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에 관여하고 청와대의 협력을 통해 재단을 운영했다는 증언이 나왔는데 아버지 최태민이 '행정기관 지원'을 바탕으로 봉사단의 자금을 조달한 내용과겹친다.

보고서는 최태민의 이 같은 행각이 물의를 일으켰다고 적었다.

"이 기간 조직을 주축으로 대학·고·중·국교·유치원 및 약사회, 의사회 등 10개 참가단체와 각 직장봉사대 등을 망라 새마음 인구 2,000만명을 호언하면서 충·효·예 등 국민도의 양양과 사회봉사사업을 표방, 각종사업을 추진하여 왔으나 무리한 행사준비로 예산낭비와 부담과중, 기능과 역할에 상응한 사업비를 자체조달보다는 각 기업체 및 행정 지원 등 대외의존으로 민관폐 막심, 최태민 등 봉사단 간부의 각종 부조리 자행 및 월권행위 등으로 참여인물이나 관민 등으로부터 내면적인 호응을 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민적 빈축을 초래"

최순실씨는 재단의 설립금뿐 아니라 자신의 회사를 주관사로 등록시켜 한 기업에 80억원의 자금을 대라고 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성한 전 미르 사무총장이 현재 최씨의 행각을 증언하는 등 내부 갈등이 밖으로 노출되고 있는데 아버지 최태민의 봉사단 운영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 내용과도 닮아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의 봉사단에 영향을 받아 충·효·예를 강조하는 새마음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박 대통령은 "물질적인 발전과 정신 개발이 병행되도록 하려는 정신혁명운동"이라고 새마음운동을 치켜세우고 "충·효·예를 바탕으로 한 새마음은 밝은 마음, 맑은 마음, 고운 마음, 깨끗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태민 보고서에서는 "최태민은 그간 롯데, 신라, 도큐호텔 및 국일대한반점 등을 무대로 매일같이 정관계 언론계 등 각계 중견인사와 접촉 초호화판으로 행세하면서 박근혜를 빙자한 이권개입, 금품수수 등으로 치부 및 엽색행각으로 물의를 야기하여 오다가 은신 중에도 박근혜와는 은밀리에 연락을 유지, 후견인역을 계속 자행"했다고 썼다.

보고서는 또한 “횡령 14건 2억 2천여만원”, “사기 1건 2백만원”, “변호사법 위반 11건 9천 4백여만원” 등 최태민의 구체적 비리내용도 적시돼 있다.

비리 내용을 보면 당시 공직에 있던 사람과 기업체 대표 등에게 청탁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일례로 1978년에는 부산시가 시행하는 서면지하상가 건설공자 업자 지명에 개입하기 위해 박근혜 비서관 김도룡으로 하여금 부산시 공무원에게 압력을 작용토록해 특정회사를 인가자로 선정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77. 5. 8 경 동대문시장 상인 방모씨외 8명에게 박근혜 명예총장 대구 새마음갖기 발대식 참석시 비행기에 동승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전세비 부담명목으로 100만원 수수"했다는 내용은 최태민의 입김이 어느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지금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최순실 두 사람의 사교(邪敎)에 씌어 이런 일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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