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전방위 국정농단이 사실로 확인됐다. 최씨는 박 대통령의 국내외 연설문뿐 아니라 청와대 민정수석을 포함해 비서관 등 인사자료, 외교·안보 분야 기밀에 해당하는 비공개 대북 군사접촉과 박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자료 등도 미리 받아본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의 비판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혹독했다. 보수와 진보언론을 막론하고 ‘대통령의 자격’을 물었다. 한겨레는 “이번 사태로 박 대통령은 사실상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것은 단순한 레임덕이 아니다. 대통령 국정 운영 권능의 붕괴 사태”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최씨의 국정농단이 확인되자 시민들은 박 대통령을 수사하고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도 “나라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을 연달아 접한 국민은 참담하다”며 “새누리당도 정신 차려야 한다”고 질타했다. “이건 나라도 아니다”는 말이 회자되는 상황이다. 

다음은 26일 아침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대한민국 ‘최순실 패닉’> 
국민일보 <朴 “최순실 도움 받아”… 국정논단 파문 확산> 
동아일보 <후속조치 없는 사과… 파문수습엔 역부족> 
서울신문 <“인사·안보 문건까지… 최순실에게 넘어갔다”> 
세계일보 <박 대통령 “최순실에 연설문 도움 받았다”> 
조선일보 <“최순실, 민정수석 추천서도 미리 받아봤다”> 
중앙일보 <“최순실 파일엔 남북 군 접촉 기밀도 있었다”> 
한겨레 <“최순실, 정호성이 매일 가져온 대통령 자료로 비선모임”> 
한국일보 <朴대통령 ‘최순실 비선 역할’ 시인> 

최순실, 청와대 인사개입에 외교안보 기밀까지 받아봤다

이날 조선일보는 최씨가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을 추천하는 내부 보고서를 받는 등 청와대 인사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TV조선 보도를 인용하며 “이와 함께 최씨는 대외비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표를 사전에 받아 보는 등 박 대통령의 국제 행사 의전에도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5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 해외 순방 일정은 경호상 이유 등으로 철저히 보안에 부치는데 민간인인 최씨가 이를 빠르게는 1개월 전쯤에 받아 본 것이다. 

TV조선은 이날 최씨 측근들이 일했던 사무실에서 입수한 청와대 인사 보고서 2매를 공개했다. 2014년 5월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추천인 및 조직도’에는 당시 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 등 현직 참모들의 사진 및 프로필, 그리고 홍 수석 후임자로 곽상욱 당시 감사위원이 추천됐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조선일보는 “그러나 청와대 민정수석 인사는 보고서가 최씨에게 넘겨진 이후 어느 시점에 결과가 바뀌었다”며 “문건에는 민정수석으로 곽상욱 당시 감사위원이 추천됐지만 실제는 김영한 전 대검 강력부장이 임명됐다. 우병우 당시 변호사는 인사 보고서 작성 직후인 2014년 5월 이중희 민정비서관 후임으로 민정비서관에 임명됐고, 2015년 1월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26일자 1면
TV조선은 최씨가 청와대 인사 외에도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의상을 선정·공급하는 등 국제 의전에도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최씨는 암호명 ‘북극성’으로 불린 2014년 9월20~26일 유엔총회 순방 일정표를 미리 받아서 행사마다 박 대통령이 입을 옷을 적어 넣었다.

조선일보는 “최씨가 받은 이 일정표는 외교부 의전장실이 8월7일 작성한 대외비 문서였다”면서 “JTBC가 입수해 이날 보도한 최씨 컴퓨터 파일 중에도 지난 2012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이 북한과의 비밀 접촉 등을 논의하는 내용 등 외교·안보 관련 대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청와대 ‘조직적 공모’ 없인 불가능하다”

중앙일보는 JTBC가 입수한 최씨의 PC 파일들을 추가 분석한 결과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단순히 수정했을 뿐 아니라 국가 기밀 문건까지 취급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PC 파일 중 2012년 12월28일 오전 4시56분에 저장된 ‘청와대 회동’이란 제목의 8쪽짜리 문건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이명박 대통령의 면담을 앞두고 박 당선인이 참고해야 할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며 “실제 면담이 있기 10시간 전이었다”고 밝혔다.

이 문건의 ‘외교안보 현안’에는 “북한의 추가 도발 방지를 위한 국제 공조 외에 남북 간 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남북 간에 어떤 접촉이 있는지요”라는 박 대통령의 예상 질문이 적혀 있다. 그 질문 바로 아래 대화에 참고하라는 취지로 ‘※최근 군이 북한 국방위원회와 3차례 비밀 접촉이 있었다고 함’이란 보충 설명이 적혀 있었다. 

중앙일보 26일자 1면.
중앙일보는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2012년 우리 군과 북한 국방위원회 간에 비밀 접촉이 있었다는 건 알려지지 않은 기밀 사항이었다”며 “그 내용을 최씨가 알고 있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또 “최씨의 PC 파일에는 박승춘 보훈처장, 박승훈 예비역 해병 준장, 박종준 전 경찰청 차장을 포함한 초대 청와대 경호처장(현 경호실장) 후보군 명단이 적힌 ‘역대 경호처장 현황’이란 문건도 발견됐다”며 “문건의 최종 수정시간은 청와대 경호실장 인선을 한 달쯤 앞둔 2013년 1월3일 오전이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청와대의 중요·기밀 자료가 민간인 최씨에게 지속적으로 전달된 것을 두고 한겨레는 “청와대의 ‘조직적 공모’가 아니고선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통상적으로 대통령의 공개회의 연설문은 경제, 교육문화, 고용복지 등 각 수석실에서 초안을 올리면 이를 연설기록비서관실에서 모아 최종본을 작성하게 된다”며 “연설문이 대략 완성되면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들이 모여 돌려보며 의견을 교환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주요 연설을 직접 수정 및 첨삭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고 보도했다.

박 대통령은 25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씨에게) 의견을 들은 적도 있다”고 시인했으나 어떤 방법으로 의견을 들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한겨레는 “청와대 직원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컴퓨터에서 개인 전자우편을 사용할 수 없고, 청와대 안에서 작업한 문서는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내려받는 것도 불가능하다”며 “결국 최씨에게 자료가 넘어간 경로는 청와대 공식 전자우편 계정을 통해 최씨의 개인 메일로 전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와대 직원들은 청와대 외부인에게 이메일을 보낼 경우, 이를 모두 총무비서관 산하 전산팀에 소명을 해야 한다”며 “청와대 부속실 안에 일반 전자우편 전송 등이 가능한 컴퓨터를 이용해 자신의 개인 메일로 최씨에게 보냈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떤 경우든 모두 청와대 사이버 보안부서에서 메일 전송내역을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26일자 1면
“‘문고리 3인방’ 정호성이 대통령 보고자료 건넸다”

최씨가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30㎝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최씨는 이 자료를 가지고 국정 전반을 논의하는 ‘비선 모임’을 운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 전 총장은 “‘대통령 보고자료’는 주로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한테 보고한 것들로 거의 매일 밤 청와대의 정호성 제1부속실장이 사무실로 들고 왔다”며 “최씨는 주로 자신의 논현동 사무실에서 각계의 다양한 전문가를 만나 대통령의 향후 스케줄이나 국가적 정책 사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정호성 제1부속실장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비서관 가운데 한 명이다. 

이 전 총장에 따르면 최씨는 이런 모임을 주제별로 여러 개 운영했는데, 일종의 대통령을 위한 자문회의 성격이었다. 이 전 총장은 비선 모임의 참석자와 관련해 “적을 때는 2명, 많을 때는 5명까지 모였다. 나도 몇번 참여한 적이 있다”며 “모임에 오는 사람은 회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지만 차은택씨는 거의 항상 있었고 고영태씨도 자주 참석했다”고 말했다. 

차씨는 광고감독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들어 ‘문화계의 황태자’로 불리고 있는 인물이다. 고씨는 최씨와 막역한 사이로 그가 만든 가방을 박근혜 대통령이 들고 다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전 총장은 “최순실씨는 모임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이 자료를 던져주고 읽어보게 하고는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며 “최씨의 말을 듣고 우리가 사업 계획서를 작성해 올리면 그게 나중에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 청와대 문건이 돼 거꾸로 우리한테 전달됐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 전 총장은 이런 말을 하면서 기자에게 자신의 아이폰에 사진파일로 저장된, 자신이 작성한 뒤 다시 청와대 문건 형식으로 내려온 문건들을 비교해 보여줬다”며 “그는 또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된 청와대 수석비서관 및 비서관 20여 명의 전화번호를 보여줬는데 한겨레가 나중에 파악해보니 실제 전화번호와 일치했다”고 밝혔다.

이 전 총장은 비선 모임의 논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한 10%는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과 관련한 일이지만 나머지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과 관련된 게 대부분으로 최순실씨는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라고 표현했다”며 “이 모임에서는 인사 문제도 논의됐는데 장관을 만들고 안 만들고가 결정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얘기는 통념을 무너뜨리는 건데, 사실 최씨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구조다.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면서 “최씨한테 다 물어보고 승인이 나야 가능한 거라고 보면 된다.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도 사실 다들 최씨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26일자 사설
최순실, 청와대 행정관 수족처럼 부리고 대통령 기밀 동선까지 파악

TV조선은 최씨가 2014년 11월 청와대 부속비서관실 행정관 2명과 함께 박 대통령의 의상 제작에 직접 관여하는 장면도 보도했다. 최씨가 박 대통령 취임 후 1년 9개월이 지난 시점까지도 박 대통령의 의상을 담당하며 대통령의 해외 행사 의전에 관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일보는 TV조선 보도를 인용해 “최씨는 박 대통령의 2013년 11월 서유럽 순방과 2014년 9월 캐나다·미국 순방 등의 일정표를 미리 받았고, 일정표에 따라 의상 등을 만들어 박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외교부 의전장실에서 작성된 해당 문건에는 ‘대외(對外)주의’라는 표시가 찍혀 있었지만, 민간인인 최씨가 이를 사전에 전달받아 박 대통령이 입을 옷을 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최씨와 함께 서울 강남의 비밀 의상 제작실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의상을 챙긴 것으로 확인된 윤전추 청와대 부속비서관실 행정관(3급)과 이영선 행정관도 등장한다. 윤 행정관은 최씨의 추천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인물이며, 이 행정관도 제2부속실 소속으로 박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인물이다.

TV조선이 공개한 비밀 의상 제작실 CCTV 영상에는 윤 행정관이 최씨와 대화를 나누며 박 대통령의 의상을 챙기고 회색 운동화를 몇 번 신어 보는 모습이 나온다. 며칠 뒤 최씨와 재단사가 디자인 시안으로 추정되는 서류를 보며 이야기를 나눌 때 윤 행정관은 옆에서 옷을 옷가방에 싸고, 사무실의 상자를 치우기도 했다. 이 행정관도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수행비서로 일하다가 청와대에도 함께 들어갔다. 그 역시 최씨의 개인 비서처럼 근거리에서 수행하는 모습이 영상에 담겨 있다. 이 행정관이 음료수 상자를 책상에 정리하는 등 허드렛일을 하는 모습도 찍혔다.

조선일보 26일자 3면
이뿐만 아니라 최씨는 2013년 7월 박 대통령의 경남 거제시 저도 여름휴가 동선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JTBC는 최씨의 PC에서 박 대통령이 2013년 7월29일부터 8월2일까지 4박5일간 경남 거제시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며 촬영한 13장의 사진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박 대통령은 휴가 중인 같은 해 7월30일 오후 5시40분쯤 페이스북에 ‘추억 속의 저도’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5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최씨 PC에 저장된 사진 중 8장은 당시 박 대통령이 공개하지 않은 사진들이었다”며 “최씨의 PC에 사진이 저장된 시점은 박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5장의 사진을 공개하기 10여 시간 전인 7월30일 새벽 1시40분부터 오후 3시까지였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당시 청와대는 대통령의 동선은 기밀 사항이라며 휴가지가 어디인지도 공개하지 않았다. 철저한 보안 속에 떠난 박 대통령의 여름휴가를 최씨는 미리 알고 있었 던 셈”이라며“박 대통령은 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첫날인 8월5일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을 교체하고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비서실장에 발탁했다. 이런 비서실 개편안이 담긴 국무회의 말씀자료도 최씨는 받아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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