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에게 하늘이 무너졌다.

실질적인 ‘국가권력 순위 1위’로 불리는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 등을 사전에 받아보거나 열람하고, 손질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청와대 보고서가 날마다 최순실에게 배달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최순실의 박근혜 연설문 개입에 대해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21일 국회 답변에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박근혜에게 하늘이 무너졌다고 하는 이유는,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던졌을 ‘개헌 카드’가 연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최순실 개헌’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개헌은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개헌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다. 여야 정당과 국회에 맡기는 개헌도 될까 말까한데, 박근혜가 주도하는 개헌은 결코 성사될 수 없다. 국민들이 가만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개헌의 성사 여부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박근혜는 이제 천 길 낭떠러지 끝에 서 있다. 아니면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 온 몸이 다 빠지고 목만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형국이다. 박근혜에게 하늘이 무너졌으니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는데, 그 구멍이란 게 있을까?

박근혜에게만 하늘이 무너진 것이 아니다. 국기 문란 정도가 아니다. 박근혜가 기회 있을 때마다 자랑스레 강조했던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인 대한민국의 위신과 국민들의 자존심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이건 국가나 정부가 아니다. 제정(祭政)일치 시대의 원시 부족사회나 다름없다.

‘최순실 게이트’는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필연이었고, ‘최순실 개헌’은 ‘박근혜 파라독스(paradox‧역설)’의 완성을 향해 가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될 것이다. 박근혜 파라독스란 무엇인가? 연세대 박명림 교수의 주장과 설명에 따르면, “박근혜의 출마는 박정희를 역사에서 현실로 끌어낸 결정적 계기였다. 물론 박근혜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박정희는 역사적 평가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럴 경우 박정희의 독재·실패·오류보다는 업적·발전·기여가 더 크게 기억되었을 것이다. 즉 박정희 비판을 불러일으킨 일등 공신은 박근혜 출마라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박근혜의 대통령 출마는 부친과 자신을 위해 최선의 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중앙시평 2012.10.18. ‘박정희의 희극, 박근혜의 비극’)

박근혜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이나 국가발전을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신(神)적인 존재나 다름없는 아버지 독재자가 자신의 기준으로 제대로 평가받도록 만들겠다는 목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제 박근혜는 자신의 무능과 무지와 판단 잘못으로 아버지를 무덤에서 꺼내 역사적으로 부관참시(剖棺斬屍)하게 만들고 자신은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부녀 통치 23년’은 국민들의 저주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박근혜 파라독스다.

최순실 개헌은 박근혜 파라독스를 앞당기게 될지 모른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에서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탄핵 위기에 몰리자 스스로 사임함으로써 그나마 탄핵이라는 최악의 불명예는 면할 수 있었다.

이제 박근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 물러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박근혜는 닉슨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다. 야당들이 탄핵을 발의하고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최순실 게이트를 덮으려고 하면 할수록 ‘게이트가 게이트를 낳을 것’이다. 버티고 버텨 임기를 가까스로 채우고 물러난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박근혜의 운명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박근혜의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과 사과만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운명의 시계소리가 째깍 째깍 그의 목을 조이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