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내부 문서의 민간 유출 사건에 대해 새누리당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는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사과했으며 당 내에서는 “비상상황” 선언 “개헌 논의 중단” 등 요구도 나왔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5일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열고 “연일 쏟아져 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국민 앞에 차마 머리를 들 수 없다”며 “집권여당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종합편성채널인 JTBC는 전날인 24일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컴퓨터 저장장치에서 44건의 청와대 연설문과 인사 관련 문건, 수정된 문건 파일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청와대가 최순실씨의 지시를 받아 연설문을 작성하거나 인사를 단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 박근혜 대통령이 10월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한 뒤 연단을 내려와 새누리당 의원과 악수하고 있는 뒤로 김종훈, 윤종오 무소속 의원이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을 묻고 백남기 농민 부검을 반대하는 의견을 적은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새누리당은 당초 오전 9시에 열기로 했던 원내대책회의를 30분 간 미루면서 원내지도부의 의견을 모았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제기한 ‘개헌’을 이야기하는 대신 야당이 주장했던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개헌론이었지만 새누리당 내에서도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을 덮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사소한 메모 한 장이라도 새 나가서는 안 되는 문건이 무더기로 청와대 밖의 한 자연인에게 넘어갔다는 뉴스보고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청와대가 사실 확인 전화를 안 받는다는 보도를 보고도 가슴 철렁했다”고 심경을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어 “우병우 민정수석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요구할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정무적·도덕적 책임을 다해야할 정무직”이라며 △인사 검증 책임 △비선실세의 계획적인 호가호위, 치부행위를 막지 못한 책임 △청와대의 보안을 지키고 공직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책임을 진 민정수석으로서 현재 상황에서 진상을 밝힐 수 없다고 강조하며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사정당국에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동시에 청와대와 정부에서 “최씨 일가의 조직적 범죄를 비호한 공직자를 찾아서 한 명도 빠짐없이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며 수사를 촉구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어 검찰을 향해서도 “범죄 윤곽이 제대로 안잡힌다는 한가한 설명을 이해할 국민이 없다”며 인터폴 공조를 통한 최씨일가의 신병확보 및 국내 송환 등을 촉구하는 등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런 조치들이 미흡하다면 어떠한 추가 조치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사실상 야당이 요구하는 최순실 국정조사와 특검 등의 가능성도 내비친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서도 “언론보도에서 제기된 문제가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직접 소명하고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명재 사무총장은 “최순실 문건 유출 사건이라는 믿기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며 “청와대가 사실 파악 중이라고 했지만 촌각을 다투는 사건이다. 국민에게 모든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로 개탄스럽다”며 “청와대는 빠른 시일 내에 진상을 조사해 명명백백하게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이 사건은 덮을 수도 없고 덮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당에는 “이 문제만큼은 청와대를 비호하거나 엄호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 분위기는 강경했다. 친박계인 이채익 의원이 “최순실 문제 때문에 개헌 논의나 유엔 북한인권법 기권을 위한 북과의 내통 부분이 묻혀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으나 곧이어 반발이 제기됐다.

▲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원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판하려고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했는데 상황이 최순실이라는 특정 민간인의 부정비리라고 보기에는 너무 엄청난 사건”이라며 “이 사건을 초대형 권력형 부정비리 사건으로 보고 당에 비상상황을 선언하고 특단의 대처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태경 의원은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24일) 개헌이라는 역사적 결단을 했는데 그 결단마저도 정권이 신뢰를 잃으면 힘을 얻을 수 없다”며 “최소한 최순실 의혹이 해결될 때까지는 개헌 논의를 잠정 유보해야한다”고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다만 이에 대해서는 “야당이 개헌 논의의 진정성을 의심하면서 본질을 왜곡해선 안 된다”며 개헌 논의를 국회 중심으로 진행해가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비박과 친박계의 갈등을 격화시킬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인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을 계속 말했던 사람”이라며 개헌 논의에 힘을 실었다.

청와대의 문건 유출에 대해 홍문종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측근이나 가족에게 굉장히 엄하다”며 “이미 검찰 조사를 엄하게 하라고 말했으니 검찰 조사를 지켜봤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비박계는 쉽게 넘어갈 수 없다는 분위기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최순실 사태는 ‘배신의 정치’의 결정판”, “이 사태 대처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철저하게 진상을 파헤쳐 관련자를 추상같이 엄벌해야 한다”며 특검 도입을 촉구했다.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설로만 떠돌다 결국 사실이 됐다”며 “특검을 통한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정병국 의원은 그러면서 “정권 말기마다 반복되는 드러나는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 실태가 이번에는 가족이 아닌 최순실로 드러났다”며 “이것이 개헌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고통스러운 새벽이다”, “최씨 관련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국기문란”이라며 “대통령이 밝혀야 하고 새누리당도 이 일을 덮는데 급급해서는 안된다. 야당과 협력해 빠른 시일 안에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국정조사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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