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은폐했다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사망진단서 문제의 배경으로 지목된 '정치적 외압'이 사건 초기부터 있어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및 살인정권 규탄투쟁본부(이하 투쟁본부)’는 눈에 보이지 않은 '외압'을 의심하고 있다.

▲ ⓒ민중의 소리

얼토당토않은 사망진단서 어떻게 나왔나

백씨의 사망종류는 '병사', 직접 사인은 '심폐정지'로 기록돼있다. 사망진단서에 따르면 백씨의 사인은 '급성신부전으로 인한 심폐정지'이며 '급성 경막하 출혈(외상성 뇌출혈)'이 원 사인이다.

의사들은 대한의사협회의 '진단서 등 작성·교부 지침'에 따라 심장정지같은 '사망 현상'은 직접 사인에 쓰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백씨의 경우 경찰의 물대포 살수에 의한 외상성 뇌출혈이 원 사인이라는 점이 명백함에 따라 '병사'가 아닌 '외인사'로 기재해야 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전문의들은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 살수로 인한 외상성 뇌출혈로 사망한 것은 의학적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

사망진단 또한 당시 전공의(레지던트)가 내린 판단이 아니라는 정황도 확인됐다. 투쟁본부는 백씨 유족이 '왜 병사냐'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진단서를 작성한 의사로부터 '이런 진단으로 지시됐고 나는 싸인만 한다'는 내용의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부터 당시 상황을 전해들은 박석운 투쟁본부 공동대표는 "(유족이) 진단서를 끊는 과정에서 부원장(신아무개 진료부원장)으로부터 전공의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하면서 이런 저런 사항을 적었다고 하더라"면서 "이후 유족이 사인을 병사라 기재한 것에 항의하니 '위에서' 그렇게 지시했다는 취지의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신 부원장의 전화와 관련해 서울대학교 홍보팀은 28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홍보팀도 사실 확인이 안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진료부원장은 진료 전 파트를 관리하기 때문에 여러 이유로 수시로 전화를 한다"면서 "단순하게 그 시점(사망진단서를 끊는 시점)에 전화가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고, 이 또한 확인이 안 된다"고 밝혔다.

사망진단이 ‘윗선의 논의’에 따른 것이냐는 지적에 홍보팀은 "그건 생각하기 힘든 일"이라고 답했다.

▲ 고 백남기 농민의 영정사진.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의사소견서도 왜 못 써주나

백씨 수술을 집도하고 10개월 간 백씨를 담당해온 백아무개 신경외과 과장은 '의사소견서'를 요청한 유족에게 '자신은 절대 써줄 수 없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백씨가 사망하기 3일 전의 일이다.

25일 일요일 오후 2시14분경에 사망한 백씨는 그 주 월요일인 19일부터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20일, 검찰이 병원 측에 부검 계획을 전달했다는 소문이 대책위 내부에 전해졌다. 수사 중인 사건일 경우 영장 없이도 부검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유족들은 이를 최대한 막아보기 위해 22일 경 담당의를 찾아가 백씨의 뇌출혈 원인에 대한 소견서를 요청했다. 이들은 의사소견서, 가족의견서, 진료기록 등 가능한 자료를 최대한 모아 담당 검사에게 제출코자 했다.

해당 담당의는 지난해 11월16일 '11월14일 물포 피해' 실태를 조사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에게 "함몰 부위를 살펴볼 때 단순 외상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임상적 소견"이라면서 "그냥 서 있다가 넘어질 때 생기는 상처와는 전혀 다르다"고 증언한 바 있다.

현재 유족을 대신해 언론대응을 맡고 있는 최석환 투쟁본부 사무국장은 지난 27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박경숙씨(백씨 아내)와 손영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이 백아무개 과장실을 찾아가 ‘검찰이 부검요구를 하고 있다. 부검을 막기 위해서 의사의 소견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면서 "백 과장이 ‘그런 정치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소견서를 써줄 수 없다’며 손사래 치며 정색을 했다고 하더라. 통상적으로 소견서는 이렇게 거부할 일이 아니다. 철저히 병원에서 통제하고 있다는 말 아니겠냐"고 말했다. 유족은 의사소견서를 받지 못했다.

▲ 지난 9월26일 저녁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백남기 투쟁본부와 수백명의 시민들이 촛불문화제를 열고 '살인정권 규탄한다', '특검으로 책임자 처벌' 등의 손피켓을 들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백남기 농민 위독, 경찰이 먼저 알았다?

백씨의 상태는 가족에게보다 더 신속하게 경찰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지난 7월17일 최석환 사무국장과 손영준 사무총장이 직접 겪은 일이다.

17일 밤 9시 경 서울대병원 정문 인근 농성장을 지키다 귀가하는 길에 최 사무국장은 정보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최 사무국장이 전화를 받자마자 '어르신이 위독하시다면서요?'라고 물었다. 놀란 최씨는 "어떻게 알았냐"고 되물었고 정보관이 '병원에서 그런 말이 들리더라'는 등 얼버무렸다고 한다. 그즈음 손 총장이 최씨보다 먼저 같은 내용의 전화를 다른 정보관에게 받았다. 가족이 병원으로부터 사실을 전달받은 시점과 이들이 정보관으로부터 연락받은 시점이 대동소이했다.

최 사무국장은 "사고 발생 이후부터 병원이 경찰·정부 측의 지시를 받을 거라고 심증은 계속 갖고 있었는데 이 때 물증이 잡힌 것"이라면서 "병원이 따로 '직보'하는 라인이 있을 거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높은 자리에 매일 보고한다’고?

'높은 데서도 계속 매일 보고하라고 해 힘들다.' 사고가 발생한 지 14일 째 접어든 2015년 11월27일 오후, 문아무개 당시 서울대병원 행정처장이 언급한 말이다.

문 전 행정처장은 당일 병원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의 비서관 A씨와의 대화하던 중 '관심이 언론에게만 있겠느냐. 높은 데서도 계속 매일 보고하라고 해 힘들다. 매우 바쁘다'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에 대해) 관심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는 문 전행정처장의 말에 A씨가 "언론만 관심가지지 다른 게 있겠냐"고 말한 데 대한 대답이다.

A씨는 지난 27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그런 말을 들은 것은 맞다. 길을 걷다가 지나가는 얘기로 한 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 전 행정처장은 "그런 얘기 한 적 전혀 없다. 보고를 할 것도 없는데 쓸데없는 소리를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 백남기 농민이 지난 9월25일 오후 2시14분경 사망하자 경찰은 부검을 위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쪽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수백 명의 시민들이 병원으로 모여 경찰을 막아섰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서울대 병원, 가족까지 정보통제

지난해 12월15일경, 박경숙씨, 백도라지씨, 백민주화씨 등 가족 3인은 "환자 상태에 대해 제대로 말해달라"며 신경외과 과장실 앞에서 3시간 여 동안 앉아 있었다. 투쟁본부에 따르면 유족은 사고 후 한 달여 후 직접행동을 하고 나서야 '6개월에서 1년 이렇게 계실 것 같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최 사무국장은 백씨의 가족들은 사고 직후부터 병원의 '정보통제'를 느끼고 불신감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깨어날 수 있냐', '마땅한 치료들이 있냐'는 거듭된 질문에도 병원이 제대로 답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은 환자가 살 수 있는지, 살 수 있다면 언제까지로 예상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백 과장의 대답을 못 들은 점을 가장 이해 못했고 답답해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의 태도에 이상함을 느껴온 유족들은 사고 난 지 일주일 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인의협 회원인 한 전문의는 이때부터 사망 전까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백씨를 찾아와 상태를 확인했다.

투쟁본부는 지난 10개월 간 병원 측이 석연치 않은 태도를 보여 왔다며 병원 외부에 백남기 농민 문제를 감시하는 관리자가 있다고 보고 있다. 최 사무국장은 "백 어르신이 사망하기 전부터 병원에 경찰병력이 포진해있던 것만 봐도 병원 위에 경찰이 있는 걸 알 수 있다"면서 "입원 내내 병원 내부의 일이 관리자에게 보고되고 있었을 거라 추정도 가능할 정도"라고 말했다.

해명을 듣기 위해 신경외과 교수, 부원장 등 병원 측 관계자에 연락을 수차례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못했다. 서울대 병원 홍보팀도 "직접 연결은 어렵고 홍보팀도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