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28일부터 시행된다.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 해당하는 언론사들은 사내 설명회를 열어 임직원들에게 법 준수 의무를 각인시키고 내부 윤리강령 정비와 가이드라인 제정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에선 아직 법 위반 전례가 없어서 매뉴얼이나 설명 자료만으로는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는 분위기도 공존한다. 직무관련자와 밥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이내 원칙만 하더라도 ‘더치페이’ 등 합법적인 범위를 지키기보다 당분간은 자리 자체를 만들지 말자는 얘기도 나온다. 

기자들 중에서도 매체 성격과 출입처 별로 차이는 있어, 일부 매체나 출입처 기자들 사이에선 ‘돈 없는 언론사 기자들은 어떻게 취재하라는 건지 막막하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방송사와 주요 일간지 기자들처럼 취재비 인상이나 실비 보상이 어려운 기자들은 비용이 많이 드는 출장 등 취재도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체로 윤리강령과 규정이 잘 갖춰져 있는 방송사들의 경우 청탁금지법을 대비한 별도 조직을 개설하고 사내 교육과 더불어 자료집과 가이드라인 등을 임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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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지난 달 말 청탁금지법 관련 전담 조직인 ‘윤리경영 추진단’을 출범해 청탁금지법 안내와 가이드라인, Q&A 등을 공지하고 자료집을 배포했다. 9월에는 본사와 지역국에 외부 전문 변호사를 초청해 설명회도 진행했다. 

KBS는 해외출장 등 외부 기관의 취재 편의 제공과 관련해선 가이드라인으로 “직무와 관련해 외부의 개인, 기관, 단체, 기업이 경비를 부담하는 음식물, 주류, 골프 등의 접대, 향응 또는 교통, 숙박 등 법령이 정한 범위를 넘어선 편의 제공은 받지 않는다”고 규정했으며 “외부 기관, 단체의 비용부담에 의한 출장, 연수, 여행을 가지 않는다. 단,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회사가 승인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고 정했다.

SBS 역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사내 또는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요구나 청탁을 거부하고, 동일한 청탁을 재차 받았을 경우 회사의 청탁방지담당관(윤리경영팀장)에게 신고하도록 안내했다. SBS는 특히 직무관련자와 식사와 관련해 “업무상 외부인과 식사를 할 경우 법 취지에 따라 더치페이를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하게 접대를 해야 할 경우는 1인당 3만 원을 넘지 않도록 한다”고 밝혔으며 “직무와 관련돼 외부의 개인, 기관, 단체, 기업이 경비를 부담하는 접대성 술자리와 골프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CBS도 지난 21일 외부 변호사를 초청해 설명회를 개최하고 감사실장을 청탁방지담당관으로 인사발령 냈다. 기존에 있던 윤리규정도 청탁금지법 내용을 추가해서 보완하고 가이드라인도 제정해 27일 각 부서에 전달했다. CBS 관계자는 “해외출장과 연수는 당연히 회사가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CBS는 ‘청탁금지법 준수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청탁금지법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언론사에 대한 부분은 청탁의 유형 14가지에도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해석이 어렵다”면서 “그러므로 판례가 축적되기까지는 방어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향후 1년간은 법을 엄격하게 해석해 적용하시기 바란다”고 안내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1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350여 명의 사원을 대상으로 김영란법 대상 교육을 실시했다. 한국일보도 외부 법무법인 변호사를 초청해 이달 27일과 30일 두 번의 설명회를 개최하고 노사가 협의해 임직원 행동규정과 지침을 만드는 등 대응에 나섰다. 한국일보는 기존에 두루뭉술하게 규정돼 있던 사규와 편집강령 등도 정비할 계획이다. 

한국일보 노조 관계자는 “조합에서 요구한 것 중에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법에 위반될 수 있는 지시를 하지 않고, 하급자는 그런 상급자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명문화하는 내용도 있다”며 “출장은 당연히 자비 부담이 원칙이고 지금도 우리 돈으로 법인카드 한도를 올려서 지급하고 있지만, 해외연수는 아직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노컷뉴스
사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기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취재비 인상이다. 하지만 아직은 다들 타사 동향을 살피는 수준이다.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발언을 언급하며 “조선일보가 먼저 나서주면 다른 회사 기자들도 요구하기 쉬워진다”고 말했다. 

방상훈 사장은 지난 2일 “회사는 앞으로 해외 출장을 포함해 모든 취재에 들어가는 경비를 회사에서 지원하겠다”며 “취재원들과 만나서 식사할 때 들어가는 우리 기자의 비용은 물론 취재에 필요한 일체의 비용을 회사에서 지원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조선일보에서 취재비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노조 관계자는 “공식적인 건 아니지만 검토 정도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서마다 취재비 등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수렴 중”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법인카드 사용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법인카드가 있지만 10만 원 이하로 쓸 때는 부장 승인이 필요하고, 10만 원 이상 사용할 경우 편집국장 승인까지 받아야하는 ‘사후보고’ 과정 때문에 사실상 편의대로 사용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지난해 기자들이 쓴 법인카드 총액이 1200만 원에 불과했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중앙일보는 ‘사전보고’ 제도 도입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취재에 필요한 비용을 회사에서 부담한다는 큰 원칙을 갖고 있다”며 “액수 등은 협의해야한다”며 “취재에 불편 없이 집행 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일보·JTBC 통합노조는 사전보고 도입을 두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있는 중이다. 기자들 사이에선 부정적 의견도 나온다. 한 기자는 “사전보고 방식이라면 고위직이 아닌 직원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면 결국 기존 취재비를 쓰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재정 상황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언론사의 경우 취재 역량 위축이 우려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한겨레 한 기자는 “취지 자체는 동의하지만 부익부빈익빈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여력이 되는 언론사는 기존의 취재 기회를 그대로 가져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언론사 기자들은 그만큼 기회를 잃는 것”이라고 전한 뒤 “아직 시행 전이라 가늠이 안 되지만 내 월급을 깎아먹으면서 취재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역시 취재비 인상이 구체적으로 논의는 안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노조 경향신문지부 관계자는 “회사 부담 원칙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지만 제도화는 되지 않았다”고 간단하게 언급했다.

지금껏 언론인들이 누려온 부당한 특혜로 부정청탁금지법에 언론인도 포함됐다. ⓒ권범철 화백
상대적으로 기자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열악한 인터넷 매체, 전문지 등은 이렇다 할 대책이 아직 없는 곳이 많다. 한 문화전문 매체 기자는 “취재비는 기존과 변동이 없고 원칙적으로 5만 원 이상의 공연은 아예 보지 않기로 했다”며 “기획사나 제작사가 기자들을 대상으로 프레스콜(시사회)이나 드레스 리허설(무대연습)을 하지 않는 이상 일반 관객들과 함께 관람하는 고가의 공연 리뷰 기사는 쓰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연극이나 짧은 공연은 프레스콜로도 전막 관람이 가능하지만 러닝타임이 3시간이 넘는 대형 뮤지컬은 다 못 보여주고 하이라이트 장면만 추려서 보여줄 텐데, 기자 입장에선 공연 전체를 안 보면 리뷰를 쓰기도 어렵다”며 “클래식이나 내한 공연은 아예 리허설 공개도 못 하고 공연 가격도 비싸서 못 볼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한 영화 담당 기자는 “기존에 극장 측에서 제공하던 영화 프레스카드도 없어졌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일부에선 청탁금지법에 저촉 안 되는 범위 내에서 지원해 달라는 요구도 있었는데 극장 쪽에서 부담스럽다며 일괄적으로 없앴다. 업계에서 그렇게 하겠다는데 언론사에서 요청하는 것도 구차하다”며 “프레스콜이 있어도 일정상 못 가는 경우도 있고 정말 필요한 공연이면 실비를 청구하겠지만, 외려 소규모 공연사는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패션·뷰티나 여행 전문지 등의 고민도 커졌다. 한 패션 매거진 A 기자는 “업체에서 신제품을 소개하러 라운딩도 오는데 그것도 오지 말라고 하고, 회사에선 애매하면 일단 하지 말라고 해서 잡혀 있는 간담회도 갈까 말까 고민 중”이라며 “협찬을 광고팀뿐 아니라 기자들이 직접 브랜드사에 문의해서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못하게 돼, 잡지 기자들은 우리가 왜 청탁금지법에 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전했다. 

여행 전문잡지 B 편집장은 해외여행을 주로 다루는 매체는 훨씬 타격이 커 존폐 위기까지 걱정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외국 관광청도 지금 지켜보자는 추세고 아예 국내 미디어를 배제하겠다는 곳도 많다”며 “사실 한국 잡지가 여행지 취재를 자비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어서 결국 대책은 프리랜서를 쓰는 건데, 그렇게 되면 전문기자들이 취재할 영역이 없어질 것이고 폐간하는 잡지도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B 편집장은 “관광청 팸투어에서 기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건 관광지를 보여주는 게 주이고 취재할 때도 굉장히 빡빡하게 움직여 호화롭게 대접받는 것도 아니다”며 “전 세계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데 한국 미디어만 빠지는 것에 대해 해외에서도 난센스라고 그런다. 잡지나 매체 실정과 속성에 맞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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