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주필직에서 물러난 송희영은 ‘주인공’이 아니다. 이번 싸움의 주연은 청와대의 박근혜와 조선일보(사장 방상훈)다.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과 송희영 주필은 대리인으로서 ‘주연급 조연’이다. 부적절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큰 싸움에 등장하는 ‘소품’ 정도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열흘 전 쯤 조선일보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싸움의 본질은 엄밀한 의미에서 언론사와 권력기관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비판과 감시를 둘러싼 ‘통상적인 행위’로 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이번 싸움의 본질은 레임덕에 몰려있는 현재 권력 박근혜와 늘 정치권력 창출에 모든 것을 걸어 온 조선일보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이는 ‘생존게임’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행태만 놓고 보면, 조선일보는 통상적인 의미의 언론사가 아니다. 권력기관 그 자체다.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 다음날 방일영 조선일보 회장(2003년 작고)은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 부부를 흑석동 대저택(대지 3,800여평)으로 초대해 축하만찬을 열었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기생집 등에서 가장 자주 술을 마신 언론사 사주도 방일영 전 회장이다. 술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방일영 당시 사장에게 붙여준 별명이 ‘밤의 대통령’이다. 조선일보는 박정희 대통령 이래,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 때를 제외하고, 모든 권력의 창출에 앞장섰고, 최고권력자들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다. 때를 같이 하여 조선일보의 사세와 매출은 늘어만 갔다. 조선일보가 자랑하는 ‘1등신문’ 배경의 하나도 이런 것이다.

조선일보-청와대 싸움의 ‘중간 결과’가 드러났다. 조선일보가 박근혜의 청와대로부터 ‘부패기득권세력’으로 몰렸다. ‘단순 접대’ 이상의 금품과 호화 요트여행 특혜를 받은 의혹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은 사의를 표명했고, 조선일보는 ‘신속하게’ 사임을 받아들였다.

송희영은 보통 기자가 아니다. 송희영은 1978년 조선일보에 기자로 입사하여 경제부장, 동경특파원, 워싱턴지국장, 사장실장, 출판국장, 편집국장, 논설위원실장, 주필/편집인 등 조선일보에서 사주가 아닌 기자로 할 수 있는 모든 중요 보직을 다 거쳤다. 그런 그도 조선일보가 살아있는 권력과 벌이는 처절한 권력싸움 앞에서는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송희영은 자신의 부적절한 행동 때문에 ‘희생양’으로 불리기도 어렵게 됐다. 잘 나갈 때 조심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제 조선일보와 방상훈 사장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굴욕’을 감수하고 가만히 있으면 조선일보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종편 재허가 심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벌이는 종편심사 결과는 내년 3월쯤 나오게 된다. 조선일보와 방상훈 사장은 종편 재허가 취소를 무릅쓰지 않으면 청와대와 정면승부를 벌이기 어려울 것이다. 조선일보와 방상훈은 종편을 포기하지 않으면 박근혜를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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