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영) 증인은 그동안 체제 언론의 장본인으로 언론을 왜곡하고 권력에 추종했는데 지금 심정이 어떠한가.”

지난 5월 별세한 고(故)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은 1988년 12월 국회 ‘언론청문회’에 증인으로 선 적이 있다. 1975년 조선‧동아일보 대량해직 사태, 1980년 언론인 강제해직 등에 대한 진상과 책임을 묻는 자리였다.

앞서 언급한 건 당대 국회의원들의 질문이 아니다. 1988년 청문회를 앞두고 방우영 당시 조선일보 사장이 기자들과 함께 연 ‘모의 청문회’에서 나온 ‘가상 질문’이다. 안면몰수하고 적나라한 질문을 던진 이는 최근 논란의 주인공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당시 경제부 기자)이다.

▲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사진=연합뉴스)
‘언론청문회 출석’은 방 고문이 신문 경영을 하며 고통스러웠던 순간으로 꼽는 사건이다. 당시 김대중 논설위원과 함께 청문회 연습을 도운 인사였다는 점에서 송희영에 대한 신뢰를 가늠할 수 있다.

송 전 주필은 한때 “방상훈 사장의 오른팔”이라고 불렸다. ‘방 사장의 심중을 가장 정확히 읽고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그에 대한 사주의 신뢰는 탄탄했다. 

‘경제통’인 그는 2005년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그의 기명 칼럼은 보수·진보 진영에 거칠것 없기로 유명했다. 

일례가 2004년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를 겨냥한 칼럼이다. 조 대표가 서울 장충체육관을 빌려 ‘이론무장을 위한 대강연회’라는 이름으로 보수집회를 여는 것에 대해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추진했던 우파(右派) 혁명을 꿈꾸는 극단”이라고 비판했다. 

또 “가난에서 만백성을 구했다는 박정희의 유령이 온 나라를 휘감고 있으며 그 덕에 몇몇 정치인은 차기 지도자로 인기 상종가(上終價)를 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칼럼은 국가보안법, 친일청산법 등 노무현 정권의 4대 개혁 입법에 대해 “기득권자와 강남 사람들에 대한 공격에 만족할 수 없었는지, 언론계·종교계·사법부 등에 가차없이 칼과 화살을 쏟아붓고 있다”며 양쪽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논조였지만 극우 세력에도 ‘공세의 필봉’을 휘두른 그였다.

조선일보 내에서 그의 스탠스는 다소 특별했다. 친 시장 성향의 조선일보 논조와 달리 그의 칼럼은 대기업 중심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옹호하는 취지의 칼럼(2008년 8월9일자) 등은 논란을 부르곤 했지만, 대기업에 특혜를 가져다주는 MB정부의 경제 정책과 친 서민 정책의 허구성을 도마 위에 올렸다.

2013년에 펴낸 저서 ‘절벽에선 한국경제’에는 재벌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 묻어있다. 

“수십조 원의 잉여금을 쌓아둔 대기업이 중소 협력업체를 핍박하고 직원의 임금을 올려주는 데 인색한 현실에 국민이 공분하고 있다. 오죽하면 우군이었던 새누리당까지 재벌개혁을 주장하게 되었을까? 그렇지만 재벌개혁이 ‘반기업’으로 간다면 한국 경제에는 희망이 없다. 온갖 파렴치한 행위로 유난을 떠는 극소수의 재벌과 국민을 먹여 살리는 기업을 구별하는 것이 재벌개혁의 전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송 전 주필은 박근혜 경제팀의 핵심인사였던 최경환 경제부총리(현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해야 할 말을 터놓고 다 하는지 의문”이라며 “최측근이라고 해도 갑을 관계는 명확해 보인다. 펀드를 만들어 청년 일자리를 해결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내놓아도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며 두 팔을 들어 반대할 처지는 못 된다”(2015년 9월19일자)고 비판했다.

▲ 조선일보 2015년 9월19일자 송희영 칼럼.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보다 훨씬 호사스러운 무대 위에 서있다. 아버지 세대는 경제정책의 산부인과 역할을 했던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설립할 때도 원조금을 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투자할 곳을 찾아 떠도는 여윳돈이 금융시장에 흘러넘친다”(2013년 2월23일자)고 기대했지만 최근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대책 덕분에 취업한 사람 숫자가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을 것이라는 우스개도 들린다”며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가하곤 했다.

‘안티조선운동사’의 저자 한윤형씨는 29일 송 전 주필에 대한 억대 접대 의혹이 폭로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송희영 주필은 조선일보에서 대기업 중심 정부 정책을 가장 비판하던 필자”라며 “‘조선일보 내부의 좌파’는 (대우조선해양의) 저런 접대를 받는 위치였다니 그들에게 글쓰기가 무엇이었는지 참담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1등 신문’의 기명 칼럼으로 전성기를 누린 노회한 주필은 ‘부패 언론인’이라는 오명과 함께 자신의 칼럼과 사설로 생사가 결정될 위기에 몰렸다. 

대우조선해양 전직 경영진의 ‘외유성 출장’에 동승한 송 전 주필이 억대의 향응을 대접받았다는 의혹은 40여년 언론인(1954년생‧1978년 조선일보 입사)의 옷을 벗게 만들었다. 조선일보는 30일 그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는 2011년 9월 대우조선해양의 초청으로 8박9일 유럽출장을 다녀올 당시 조선일보 사설을 책임지는 논설주간이었다. 검찰은 그가 출장 시기를 전후해 다룬 보도 내용을 살펴보며 위법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화 출장의 대가로 회사 편집방향과 다른 기사·사설·칼럼이 실렸는지가 배임수재 혐의 유무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언론은 2011년 10월13일자 조선일보 사설 “대우조선이 간부후보로 고졸 뽑는다는 반가운 소식” 등을 지적한다.

송 전 주필은 “의혹에 휘말리게끔 된 저의 처신으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거침없던 펜의 비참한 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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