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진흙탕 같은 싸움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부패척결 프레임과 언론탄압 프레임이 충돌하면서 본류였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의혹 검증이라는 물줄기가 사라지는 모습이다. 우 수석 사퇴 목소리도 급속도로 힘을 잃고 있다.

청와대는 '우병우 수석 죽이기'에 맞서 부패척결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우병우 수석 처가의 1300억원대 부동산 매매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의 보도는 근거가 없고,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소속의 송희영 주필이 부패 세력이라는 것이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송희영 주필의 실명을 공개하고 두 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부적절한 향응을 받은 것을 밝힌 것이 그 근거에 해당된다.

송 주필은 직급상 발행인으로 조선일보 보도의 큰 그림을 그리는 설계자다. 우병우 수석 비리 의혹을 보도한 최고 책임자가 부패에 연루돼 있다는 것은 보도의 배경과 신빙성이 의심 받게 되고 결국 우병우 수석의 비리는 근거가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송 주필은 끝내 사표를 제출했다.

MBC가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조선일보 기자의 대화로 감찰 내용이 유출됐다고 보도한 것을 계기로, 특별수사팀이 꾸려지고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압수수색을 당한 끝에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한 것도 심상치 않다. 당장 대통령이 약속하고 임명한 특별감찰관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청와대가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향후 감찰 수사 결과에 따라 조선일보의 우병우 수석 의혹 보도가 감찰 유출 내용을 토대로 정권 흔들기 차원에서 진행됐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

결국 우병우 민정수석 반대편에 있는 세력은 정권 흔들기를 획책한 부패세력이라고 낙인찍힌 뒤 모두 현직에서 내려왔다.

청와대가 부패척결 프레임에 쐐기를 박는 '다음 수'를 기획하고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이 송 주필을 기소하고 법적 처벌 단계에 이르면 '조선일보=부패 기득권 세력'이라는 등식과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다. 송희영 주필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과연 어디까지 이뤄질지가 관건이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송 주필이 직접 박수환 대표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내용은 없다. 김진태 의원이 송 주필의 금품 수수 내용을 밝혔다면 곧바로 검찰 수사 내용을 유출한 것이라는 역풍을 당할 수 있는 만큼 송 주필의 행적을 쫓아 부적절한 향응을 제공받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구속된 박수환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송 주필에게 명품시계나 돈을 전달한 적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역으로 검찰이 이 같은 단서를 잡았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특히 송희영 주필이 검찰 소환을 받는다면 급속도로 우병우 비리 의혹은 사라지고 청와대가 원하는 부패척결 프레임으로 전환될 수 있다. 송 주필의 직접적인 금품 수수에 대한 혐의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언론사 발행인이었던 사람이 검찰 수사를 받는 모습은 조선일보의 공정성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김진태 의원은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요트 탑승과 호텔 숙박, 항공권 등 2억원대의 향응을 송 희영 주필이 받았다면서 "범죄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런 초호화판 향응 수수는 청탁 또는 알선 명목으로 향응, 그밖의 이익을 받은 것으로 변호사법 위반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형법상 배임수재죄도 검토할 수 있다"고 한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진태 의원이 추가로 송 주필의 행적 자료를 공개할 것이라고 예고한 것과 별개로 두 차례에 걸친 자료를 근거로 고소고발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MBC가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조선일보 기자와 통화에서 감찰 내용이 유출됐다고 보도한 이후 한 보수단체는 이석수 감찰관을 고소한 바 있다. 김진태 의원의 기자회견 이후 보수단체가 나서 송희영 주필을 고발할 것이라는 예상도 어렵지 않다.

검찰은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검찰은 박수환 대표를 수사하면서 '유력언론인'의 수사계획과 혐의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언론탄압이라는 비난을 의식한 탓이겠지만 김 의원의 폭로로 인해 ‘부패한’ 언론인을 수사하는 명분을 쥐게 됐다.

조선일보를 향한 공격이 송 주필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김진태 의원은 송 주필의 행적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나흘 전인 22일 라디오에 출연해 "문제를 제기한 언론사도 이게 사실(우병우 수석 의혹)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뭐 신문사 전부 폐업할 거냐? 지금 조사 받고 있는데 간판 내리고 그 결론 날 때까지 영업을 안 할 순 없는 거잖나"며 신문사 폐업까지 언급한 바 있다.

조선일보를 손 보면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국민의당은 논평을 통해 "지금 세간에는 이번 송희영 주필 찍어내기가 ‘청와대와 검찰, 여당이 합작해 우병우 수석을 건들면 다친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떠돌고 있다. 공포 통치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쏟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진태 의원의 자료 출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우병우 수석에 대한 물타기 의혹이 나오자 발을 벗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30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해양 고위층의 연임을 부탁하는 로비를 해왔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송 전 주필이 지난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게 대우조선해양 고위층의 연임을 부탁하는 로비를 해왔다"며 "청와대가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결국 송 주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연임 로비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가 사실상 증언대에 올라 진술한 모양새가 되면서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도 또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또다른 관계자는 조선일보의 우병우 수석 의혹 제기 보도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되면서 조선일보와의 유착관계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이를 저지하려 했던 것 아닌가"라며 "결국 조선일보의 우 수석 사퇴 요구 배경에 유착이나 비리를 덮으려 했던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우병우 수석의 거취에 대해 "전혀 달라진게 없다"며 완강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우병우 수석을 정권 흔들기의 희생양으로 내세워 방패막이를 하다가 부패 세력의 부당한 국정운영 개입에 맞서 우 수석을 투사로 내세우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청와대의 강력한 반격에 조선일보는 언론탄압 프레임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코너에 몰리면서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조선일보는 30일자 신문에서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전화 통화한 조선일보 기자의 휴대폰이 압수수색을 당한 것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이례적으로 사설을 통해서도 특별수사팀의 조선일보 이명진 차장의 휴대폰 압수수색에 대해 "권력이 싫어하는 보도를 한다고 취재기자를 압수수색한 것은 언론을 적대시했던 좌파 정권에서도 없던 일이다. 이 사건은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서 중대한 악례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 탄압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믿고 있는 건 역설적으로 검찰의 무리한 수사 혹은 부실 수사에 있다. 최초 MBC가 감찰 내용 유출 의혹을 보도한 다음날 18일 "국가기관이 불법 도청이나 해킹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이 사건은 정권의 운명이 걸린 초대형 스캔들로 번질 공산이 크다. 국가기관의 불법 사찰은 용납되지 않는 범죄 행위"라고 한 것처럼 유출 문제를 반격의 고리로 삼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는 30일 신문에서 검사장 출신 변호사의 말을 인용해 "MBC가 누구한테 어떤 경위로 관련 내용을 입수하게 됐는지, 그 과정에 관련 내용을 입수하게 됐는지, 그 과정에 국가기관 개입이 있었는지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일단, 언론탄압의 희생양을 자처하면서 숨고르기를 하고 재반격의 기회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송희영 주필에 대한 청와대의 타격 초점이 '부패'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정권의 '부패'상을 들추는 보도도 예상해볼 수 있다.

우병우 수석 의혹 중 직권 남용 등을 입증하는 결정타가 없었지만 싸움이 장기화되면 사정라인 내부의 폭로를 통해 우병우 수석의 자리를 위협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

이미 현직 경찰관이 우 수석 뒷조사를 하다가 꼬리가 밟히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일보 기자가 현직 경찰관에게 우 수석의 차적 조회를 부탁해 개인정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건이 있었는데 수사 배경을 추적한 결과 현직 경찰관이 우 수석을 사찰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 수석의 자택에 탐문 활동을 벌이는 경찰관이 있다는 첩보가 접수됐고 경찰청 감찰담당관실은 조사에 나서 우 수석의 차적 조회 시스템에서 강남 경찰서 김아무개 경위가 접속한 기록이 나왔고 조선일보 기자가 차적 조회를 부탁한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경찰은 당초 우 수석을 뒷조사하고 있다는 현직 경찰관은 밝혀내지 못했다.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이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힘겨루기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운영이 시스템이 아닌 일개 참모의 영향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온데간데 없이 힘의 논리에 따라 정점에 선 권력이 어느 쪽인지를 알아맞추는 게임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언론이 정권의 국정에 개입해 좌지우지하고 흔들 수도 없지만, 이를 정권 흔들기로 보고 정치권력이 특정 언론사를 깔아뭉개는 일이 노골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집권 후반기 박근혜 정권 위기의 단면이라는 관측도 있다. 어느 한 쪽이 살고, 어느 한 쪽이 죽는 게 아니라 막판엔 아무도 승자가 없는 게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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