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풍경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생부터 집권기간내내 대변지처럼 활약해온 조선일보가 청와대를 공격했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 의혹’보도를 처음으로 보도하며 권력감시, 비판의 날을 세웠다. 청와대는 조선일보를 ‘부패기득권세력’이라 지칭하며 바로 반격에 나섰다.

반격의 형식은 조선일보의 부패상을 김진태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을 갖는 방식을 택했다.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망해가는 기업, 대우조선이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을 위해 호화 전세기를 동원, 2억원대의 향응접대를 했으며 이는 향응차원을 넘어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언론의 권력감시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반대로 권력이 언론의 핵심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는 이런 현상은 언론사를 통해 이례적인 일로 기록된다. 마치 개가 사람을 문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문 모양새가 됐다. 청와대를 대신해 나선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우군 중의 우군 역할을 해온 조선일보에 대해 ‘부패기득권세력’의 구체적 사례까지 폭로했다. 상황을 봐가면서 조선일보의 또 다른 부패상을 공개할 수도 있는 것처럼 강력한 경고신호탄을 보낸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8월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재원 정무수석, 박 대통령,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우병우 민정수석, 현대원 미래전략수석. ⓒ 연합뉴스
조선일보가 박 대통령이 아끼는 우 민정수석의 비리혐의를 보도한 것이 1라운드라면, 2라운드는 청와대의 반격이었다. 친박계의 김 의원이 단독으로 이런 자료를 공개할 이유도 없고 특히 조선일보같은 언론사를 향해 공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든 국회의원이 두려워하는 유일한 집단이 언론기관이다. 그중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한 조선일보를 상대로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사안을 기자회견을 하면서까지 비리를 폭로한다는 것은 차기 국회의원직을 포기하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불가능에 가깝다.

조선일보와 박대통령은 △왜 이렇게 정면대결을 펼칠 정도로 사이가 악화됐을까. △이 싸움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런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먼저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다분히 정치적이며 주관적이다.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차기권력 만들기에 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과 그 주변세력으로는 차기 집권이 어렵다는 판단하에 ‘대통령을 만드는 신문’ 역할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레임덕’을 인정하지않으려는 청와대를 손보지않고는 ‘조선일보의 사람’을 심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핫라인을 유지하며 권력을 분점하기 위해서는 조선일보에 더욱 의지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일반 대중은 믿기 힘들지만 대우조선에서 조선일보 주필급을 향응하면서 2억원대의 초호화 뇌물성 외유를 실행할 정도라면 이는 언론의 지위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선 것이다. 조선일보는 그 정도 힘이 있다고 믿으며 실제로 ‘대통령을 만드는 신문’으로 자부하고 있지않은가.

두 번째, 이 싸움의 종착역을 알 수 없다. 이제 전투는 막 시작단계에 불과한 2라운드가 끝났을 뿐이다. 조선일보가 송 주필을 주필직에서만 물러나게 하고 여전히 붙잡아두고 있는 것은 한번 해보자는 투지로 해석된다. 타언론사라면 부패 언론인으로 자사의 명예와 이미지를 먹칠했다면서 바로 사표수리를 하는 식이다. 역시 조선일보는 다르다. 내상을 입은 부상자를 보호하며 적개심과 투지를 활용하여 반격의 기회를 노린다. 잊어서는 안될 사례가 있다.

▲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 ⓒ 연합뉴스
조선일보는 채동욱 전검찰총장도 청와대의 뜻에 맞게 한방에 날려버린 경력을 소유하고 있다. 주필이 상처를 입은 것 정도에 조선일보가 백기투항할 일은 없다. 전투는 시작에 불과하며 그 과정의 변수 때문에 종착역은 예상이 어렵다. 그러나 내년 대선전에 이 전투는 종지부를 찍게 되고, 빠르면 연말연초에 전투의 성격과 양상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마지막으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런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가에 대한 해석이다. 먼저 권력과 언론의 전투는 서로의 목적이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은 새로운 비밀을 알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선일보 주필의 타락상을 어느 언론도 보도하지않았지만 권력이 공개하니까 알게 된 것이다. 망해가는 기업, 밑도끝도 없이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기업의 도덕적 타락이 언론사 주요 간부 향응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국가 1급 비밀을 보는 것과 같다.

이 전투는 국민을 위한 전투가 아니다. 권력은 레임덕을 막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의 우 수석 관련보도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박수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조선일보가 청와대와 ‘일심동체’처럼 움직여왔다는 점에서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평소 같으면 청와대에 흠결이 될 수 있는 보도는 타언론사가 보도해도 침묵하거나 축소해오지않았던가.

전망을 해보자면 조선일보가 청와대에 반격하는 것으로 제3라운드가 시작될 것이다. 검찰이 우 수석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동시에 수사하고 있다. 이 특별감찰관은 사임했지만 우 수석은 여전히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의 신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조선일보의 3라운드는 다시 우 수석을 정조준 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권력과 언론이 유착하면 정의가 위태로와진다. 권력과 언론이 적대시하게 되면 국정이 위험해진다.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원래의 역할에 충실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 특정인의 범죄행위를 현직 국회의원이 기자회견까지 할 필요없다. 고발조치하면 된다. 박 대통령의 ‘비정상의 정상화’는 언제쯤 실현될까. 국민이 단순 관객이 아닌 주권자로 대우받는 그런 날을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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