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양극화 풀려면 대기업노조 과보호 깨야”(한국경제)
“양보 안하는 강성노조가 일자리 막아”(매일경제)

2014년과 2015년, 고용노동부의 돈을 받고 쓴 기사 제목들이다. 고용노동부의 돈을 받았다는 내용은 기사에 담겨있지 않았다. 언론은 반노동적 프레임을 확대재생산하고 ‘쉬운 해고’로 요약되는 정부정책을 홍보하고 돈을 받았다. 정부부처는 세금을 이용해 정부정책을 홍보했다. 이 같은 권언유착은 여론조작 효과를 불러일으킨 중대 사건이다. 그러나 해당 신문사와 고용노동부는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 2015년 3월10일자 매일경제 기사. 고용노동부는 홍보대행사 인포마스터를 통해 해당 기사를 비롯한 '노동시장 개혁' 관련 기사 3건에 5500만원을 집행했다.
2015년 농촌진흥청·채널A 언론홍보계약서를 보면 농촌진흥청은 갑, 채널A는 을로 등장한다. 채널A는 농촌진흥청의 R&D 우수성 및 농가 맛 집 등 성과확산을 위한 기획보도 대가로 1500만원(부가세 포함)을 받았다. 계약서에 따르면 농촌진흥청은 기사 횟수, 게재 지면, 지면 크기, 보도 주제까지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해당 리포트에는 농촌진흥청의 돈을 받고 보도했다는 내용이 명시되지 않는다. 역시 이 경우도 법적 처벌 근거는 없다.

세계일보는 지난해 10월 장명진 방사청장의 인터뷰를 담았다. 기사 제목은 ‘비리 발생 땐 청장부터 책임지는 관리체계를 만들겠다’였다. 당시 통영함 납품비리 파문으로 불거진 방산비리와 한국형전투기 기술이전 논란으로 방위사업청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가운데 서울 ADEX행사로 방사청이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는 보도였다. 방사청은 해당 기사에 3300만원을 지불했다. 놀라운건 이처럼 지면을 사고파는 행위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부처 및 정부유관기관들은 노골적으로 언론사에 기사를 청탁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 인포마스터와 같은 홍보대행사를 통한 턴키계약으로 홍보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 같은 홍보성 기사에 대해 언론계 스스로의 자정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미 또 하나의 수익수단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언론계의 부정청탁과 권력유착관계를 없애려는 김영란법도 이 같은 지면·리포트 매매행위를 근절할 수는 없다. 김영란법이 언론계 윤리회복을 위한 ‘반쪽짜리’ 법안인 이유다.

▲ 정부광고가 특정 지역과 특정 언론에 집중되고 정부부처가 세금으로 홍보기사를 발주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는 계속되어왔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정부가 집행하는 광고비는 연간 얼마나 될까. 2015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0~2014년까지 5년간 정부 집행 총광고비(정부부처 및 정부유관기관 등 포함)는 2조2254억 원에 이른다. 연간 4500억 원 수준의 규모다. 이 가운데 인쇄광고는 40.5%, 방송광고는 26.2%의 비중을 나타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간 언론재단이 대행한 16개 정부부처 광고집행규모가 1380억 원이라고 밝혔다. 언론재단의 한 관계자는 “정부광고 예산의 20~30% 정도를 직거래광고나 협찬규모로 추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광고 규모가 적지 않고 무엇보다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만큼 어느 매체에 얼마나 집행되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문제제기는 지속되어왔다. 그러나 정부광고판매를 대행하고 있는 언론재단을 거치지 않는 정부기관-언론사 간 직거래광고가 많고 협찬을 통한 기사거래의 경우 사실상 음지에서 이뤄지고 있어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공공적 상품’인 만큼 기사 거래 행위에는 사회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방법이 없을까. 정부광고집행의 불투명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20대 국회 개원 직후인 7월7일 10명의 국회의원이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안’(정부광고법, 대표발의 노웅래 의원)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핵심은 제10조 정부기관 등의 유사 정부광고 금지 조항이다. 10조는 “정부광고 형태 이외에 언론사의 지면이나 방송시간을 실질적으로 구매하는 일체의 홍보행태를 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법안에 따르면 △언론재단과 같은 정부광고 대행기관에 광고의뢰를 하지 않고 언론사와 직거래 하는 경우 △홍보대행사를 통한 턴키홍보 같은 방식으로 정부정책 홍보성 기사를 노출시켜 실질적으로 지면을 구매하는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에 신문사업 현황을 신고하지 않고 정부광고를 우선 배정받는 경우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는 기사 매매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조항에 해당한다.

이 법안은 1조에서 “정부광고의 효율성 및 공익성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며 법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정부광고는 지방자치단체와 공공법인 광고를 포함한다. 문화부가 지금처럼 언론재단을 광고업무위탁기관으로 정하면 언론재단은 대행을 통해 현행대로 광고비의 약 10%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8조 조항에 따르면 정부광고를 우선 배정받고자 하는 언론사는 유가 부수와 구독수입·광고수입 등을 문화부에 신고해야 한다.

사실 법안의 내용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은 노웅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부광고법과 거의 동일한 법률안을 2013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법안은 계류되다 자동 폐기됐다. 만약 이 안이 통과됐다면 2014년과 2015년 미디어오늘 등의 보도를 통해 드러난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농림축산식품부 등의 홍보기사가 법적 문제를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해당 법안의 설계에 참여한 김영훈 더민주 전문위원은 “19대 국회에서 교육 분야 파행이 많다보니 논의할 시간이 부족했고 쟁점이 없는 법안 위주로 심사가 진행됐다”고 전한 뒤 “정부광고법을 통해 정부광고 외의 유사광고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영훈 전문위원은 “정부부처의 협찬규모는 현재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며 “턴키홍보는 매우 안 좋은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이 법안은 정부광고시행 심의위원회(9인)를 신설해 정부광고 홍보매체의 점유율 조사 및 산정과 홍보매체 다양성 증진을 위한 연구조사에 나서는 내용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정부광고 집행계획·내용·예산을 매년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김영훈 전문위원은 “갈수록 정부광고가 정책 홍보보다 정쟁사안에 대한 자기주장 합리화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경우로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고 심의위 신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광고 집행은 여태껏 법률이 아닌 국무총리 훈령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국민들은 어느 정부부처가 어느 언론사에 얼마나 광고 및 협찬금을 집행했는지 알 권리가 있지만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언론재단을 거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지면을 구매하는’ 일체의 행위는 불법이 된다. 점점 언론사 협찬 비중이 높아지는 현실에서 기사 매매행위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처벌할 수 없는 현 법률상 공백을 바로잡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협찬의 범위를 설정하는 문제와 협찬을 원천 금지하는 대신 협찬도 정부광고대행사를 거치게 할지 여부 등 아직 법안에 추가해야 할 논의지점들은 있지만 시행령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환 전국언론노조 정책실장은 “정부광고의 편향성을 극복하고 여론다양성을 신장하는데 법이 기여하길 바란다. 특히 고갈돼가는 언론진흥기금 확장에도 큰 재원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20대 국회에서 해당법안의 입법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정부광고는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며 정부에 우호적인 매체에 더 배분하는 식으로 편집권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부광고는 투명하게 집행해야 하며 제대로 집행됐는지 사후 평가나 검증 역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연우 교수는 턴키홍보를 통한 기사 매매행위에 대해 “정부가 특정 여론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의 사회적 신뢰를 악용하는 경우”라고 비판하며 “국민들은 이런 기사들이 진실 된 정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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