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하청노동자들이 고공농성에 돌입한지 121일째가 되던 날 고공농성장에 음식물 반입이 또다시 중단됐다. 지난 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휴일에는 식사전달을 하지 않기로 간부회의에서 결정했다고 기아자동차 지부 화성지회 노동조합에 통보한 데 따른 것이다. 인권위는 지난 8월 음식물 반입 중단 사태시 경찰이나 광고탑 회사 직원 등과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음식물이 올라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 책임 회피가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된다.

음식물 반입을 통제하는 측은 고공농성장이 위치한 옥외전광판 소유주인 광고회사 명보애드넷이다. 명보 측은 지난 7월25일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떨어진 후 직계가족 외의 사람이 고공농성장에 식사전달하는 것을 금지했다. 당시 농성자들은 일주일 동안 음식물을 전달받지 못하는 ‘강제단식’에 처하기도 했다. 8월10일에는 가족의 출입마저 통제해 식수조차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지난 8월14일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중재로 8월15일 오후부터 인권위가 책임지고 농성자들에게 음식물을 전달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지난 4일 중구 나라키움 저동빌딩으로 사무실 이전이 완료됨에 따라 휴일에는 식사 전달을 할 수 없으며 평일 식사 전달도 오는 16일까지만 책임진다고 기아차지부에 통보했다.

   
▲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었던 서울 중구 금세기빌딩 입구 모습. 명보애드넷이 설치한 경고문이 눈에 띈다. (사진=손가영 기자)
 

양경수 기아차 화성지회 분회장은 “이틀동안 9일 저녁만 전달할 수 있었다”며 “(농성자들의) 자녀들이 다 어리고 아내도 생계문제나 일 때문에 농성장을 신경쓸 충분한 여력이 없다. 농성자들은 강제단식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 분회장은 “가족이 들고온 겨울옷을 다 못올렸다. 명보측이 속옷밖에 올려보내주지 않고 있다”며 “날씨가 앞으로 더 추워질텐데 농성장엔 여름옷과 여름침낭밖에 없는 상태”라고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또한 “충전된 배터리도 하루 하나씩만 허가해줘 통신이 끊어질 위험도 있다”고 덧붙였다.

명보애드넷은 고공농성장으로 향한 접근가능성을 철저히 봉쇄했다. 1층 입구부터 직원이 상주 경비하며 가족의 물품 전달을 통제하고 있다. 고공농성자 한규협씨의 아내인 김모씨는 10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직원이 항상 물품을 검사하고 사장과 통화한다. 방한용 옷을 보내려 했을 때도 사장이 불허해서 못 올렸다”며 “명보 직원은 수건, 간식 갯수까지 일일이 파악하고 명부에 적는다”고 밝혔다.

기자의 취재도 통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1층 입구에 앉아 경비를 보던 한 명보애드넷 직원은 빌딩 계단을 이용하려던 기자를 붙잡으며 제지했다. “(고공농성장) 근처는 갈 수 없다. 기자라도 안된다.”며 “정 가려면 사장과 얘기를 한 후 오라”며 계단출입구 문을 봉쇄했다.

   
▲ 금세기빌딩 옥외 전광판에 설치된 기아차 하청근로자의 고공농성장. (사진=손가영 기자)
 

한규협씨의 아내는 “날이 엄청 추워지는데다 위에선 전광판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분다고 들었다”며 “안전이 가장 큰 걱정이다. 그런데 회사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인권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공농성자 최씨는 “양말과 옷을 껴입으면서 추위에 견디고 있다”면서 “하루 물 2리터는 성인 남자 둘이 식수로 쓰기에도 빠듯해 제대로 씻지 못하고 이도 잘 못닦은지도 15일이 됐다. 폰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명보측은 하루 물 2리터 전달만 허가하고 있다.

최씨는 이어 “국가인권위원장이 인사청문회 때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게 인권의 역할로 그 소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며 “인권위가 최소한의 마지노선 역할을 지켜줄 것을 해주십사 제발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양 분회장은 “14일 국가인권위에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가질 것”이라며 “기댈 수 있는 곳이 인권위 밖에 없다. 어떻게든 대책을 세울 것”이라 밝혔다.

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최정명씨와 한규협씨는 지난 6월 11일 "기아차는 법원의 판결을 따르라"며 광고탑에 올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9월 25일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자동차공장 내 사내하청은 불법이니 기아차는 비정규직 468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했다. 기아차는 고공농성이 122일을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정규직 전환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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