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시청 광장 한 귀퉁이에 절망탑이 세워졌다. 절망탑은 2m 높이로 만들어진 얇은 사각 기둥으로, 기둥 안엔 100만 원짜리 수표가 붙은 종이 뭉치가 들어있다. 종이 뭉치는 대학생들의 대출금으로 하나 당 가격이 백만원이다. 성공회대 학생들이 9월 개강일부터 학교 안에서 모은 것들로 지금까지 160여 개가 모였다. 이 탑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인 장다미(19)씨는 “한 사람 당 적게는 3개, 많게는 39개를 넣었다”고 말했다.

   
▲ '절망탑' 기둥 안에 있는 대학생 대출금. 현재까지 160여 개가 모여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추석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거나 내려갈 수 없는 청년들이 시청 광장에 모여 텐트촌을 만들었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생이고 일부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다. 40여 명의 청년들이 추석연휴를 지내기 위해 지난 25일 텐트 11개를 서울도서관 앞에 설치했다. 이들은 추석연휴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2박 3일을 나기로 했다. 텐트촌의 이름은 ‘한가위 한(恨)마당’이다.

이들이 추석 연휴에 이곳에 모인 이유는 다양하다. ‘취업을 못해서’, ‘알바 때문에’, ‘바쁜데다 잔소리 듣기가 싫어서’ 등이다. 지난 25일부터 텐트촌에 묵었던 정희수(21)씨는 “취업을 못해서 못 내려가겠다”며 “친구들이 여기 모여서 같이 왔다”고 말했다. 행사를 함께 준비한 대학생 이지원(24)씨는 “생활비에 보태려고 논술학원에서 보조강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추석 연휴 때 일하게 됐다”며 “행사 취지도 좋아 같이 기획하게 됐다”고 동기를 밝혔다.

   
▲ '한가위 한마당' 텐트촌 입구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대학생 김동현(23)씨도 “졸업학기를 앞두고 있는데 영어, 한국사, 한국어 등 자격증 챙기느라 바쁘다”며 “비교당하고 잔소리를 듣느니 더 편한 곳에 있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연휴 때 고향에 못 가는 사람들은 더 많다”며 “신림동과 노량진에 있는 친구들은 거의 다 고시원에서 공부를 한다”고 덧붙였다.

텐트촌 정문에는 ‘헬게이트’, ‘절망문’이란 깃발이 세워져있다. 행사의 취지를 보여주는 대문이다. 한가위 한마당을 주관한 대학생 김재섭(25)씨는 “추석은 민족 대명절이라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많이 말을 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다”며 “획일화된 청년문제 제기를 넘어서는 방법을 고민하다 (이를)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 26일 오전 11시 진행된 '계란으로 바위치기' 행사 준비 모습. (사진='한가위 한마당' 행사 주최 측)
 

실제로 26일 텐트촌에서는 청년 문제를 제시하는 다양한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오전 11시, 이들은 텐트촌 입구에 바위를 두고 계란을 던져 깨보려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행사를 열었다. 20여 명이 모여 계란 30개를 던졌지만 바위는 깨지지 않고 계란 냄새만 진동했다. 김재섭 씨는 이에 대해 “다들 노력을 안하는 게 문제라하니 정말 노력하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지나 싶어서 기획한 행사”라며 “이런 식으로라도 청년 당사자 문제를 직시하고 얘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학자금 대출'에 문제제기한 한 참가자의 모습. 행사 주최측은 준비 과정에서 "유난히 빚 문제가 많이 제보됐다"고 밝혔다. (사진=손가영 기자)
 

‘조선탈출 넘버원’은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진행됐다. 조선탈출 넘버원은 “내가 사망한 이유는?”이란 질문이 적힌 종이에 각자 답을 쓰고 종이를 몸에 붙인 뒤 바닥에 드러눕는 퍼포먼스다. “취직 안되는 문과라서”, “이제 곧 20대 후반인데 취업은 못하고, 학자금 대출만 늘어나서”, “보증금이 없어 반지하로 밀려나서 곰팡이 때문에”, “한국에 태어나서” 등 다양한 답변이 달렸다.

이들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관광버스 운전사인 최창연(51)씨는 “이들보다 더한 사람들도 많다. 빚 없는 사람들이 어딨나”라 물으며 “밥 세끼 다 먹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통행금지도 없고 공부도 제일 많이 한 선택받은 친구들”라며 “보기 좋지 않다”고 비판했다. 호텔에서 계약직 ‘벨보이’ 일을 한다고 밝힌 김 아무개씨는 “불쾌할 이유가 어디있겠냐. 나도 똑같이 불안한 상태”라며 “지금 사회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20대 라고 밝힌 김영선(28)씨는 텐트촌을 지나치며 “‘헬게이트’가 틀린 말이 아니라”며 “다들 힘내라고 전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김재섭씨는 이 행사가 젊은이들이 자신의 절망적인 사연을 이야기하는 팟캐스트 ‘절망라디오’의 연장선격이라고 밝혔다. 절망라디오를 기획한 김성일(37)씨는 “9월초부터 팟캐스트를 시작했다”며 “절망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무의미한 위로를 하지 않는 것을 모토로 다양한 사연을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가위 한마당 또한 이같은 방식으로 청년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행사다. ‘자조가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김성일 씨는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한다”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보수의 비판과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진보의 주장 사이에, 절망적인 상황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절망탑을 만든 장다미 씨도 “자조에서 그치지 않도록 그 자조를 공유하자는 취지라며 이것이 시작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김재섭 씨는 “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20년 동안 청년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며 “지금 청년문제 논의는 기성언론과 정부여당만 만드는 것이지 거기에 청년 당사자가 빠져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문제는 등록금대출, 생활비 대출, 집세 등의 ‘빚’문제”라며 “청년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계속 시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가위 한마당’은 오는 27일 추석 당일 참가자들이 아침 차례상을 같이 차린 후, 오후 12시에 정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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