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의 예술작품 검열 의혹에 대해 연극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대학로포럼, 한국연극배우협회, 한국연극연출가협회 등 연극 관련 단체 11개는 지난 21일 ‘예술 검열에 반대하는 연극 단체들의 연대’를 결성해 “예술 심의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외압도 단호히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문화예술계 원로예술인들도 22일 서울 동숭동 예술가의 집에서 문예위의 파행을 우려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문예위의 검열 정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박근형 연출가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대본 공모 지원, 우수 작품 제작 지원 사업 등에 이미 선정된 작품임에도 지원 사업에서 배제됐고 박 연출가는 문예위 직원으로부터 지원금 포기를 직접 종용받았다. 연극계는 박 연출가가 전작에서 전직 대통령을 비하했기 때문에 표적 검열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이윤택 작가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희곡 분야 심사에서 작품 ‘꽃을 바치는 시간’이 100점을 맞아 1순위를 기록하고도 선정에서 탈락됐다. 이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이 반발하자 문예위는 직접 심사위원이 선정한 102명을 70명으로 축소 선정했다. 일각에선 이 작가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지지 연설을 한 게 화근이었다고 지적한다.

윤한솔 연출가의 ‘안산순례길’ 검열도 논란이다. 지난 18일에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 연출가가 ‘정치적’이고 그의 작품이 세월호를 다뤘다는 이유로 문예위 직원이 심사위원에게 해당 작품을 선정작에서 배제하도록 종용한 사실이 폭로됐다. 해당 작품은 문예위가 주관하는 다원예술창작지원사업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한 상태였다.

‘대학로X포럼’은 가장 활발히 검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단체다. 포럼은 정치적 보복 의혹에 휩싸였던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 사태를 계기로 결성된 모임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연극제는 ‘대관 신청 서류 미비’를 이유로 30여년 간 대관했던 아르코예술극장을 빌리지 못했다. 연극제 측은 관련 연극인들이 세월호 집회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포럼을 이끄는 임인자 감독은 “국가의 입맛에 맞는 작품만 지원하겠다는 상황을 절대 묵과할 수 없다”며 “검열사태에 대한 청문회가 개최돼야 하고 문체부장관과 문예위 위원장, 문예위 예술위원 10인은 일련의 검열·보복 사태를 방관한 책임으로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 감독은 “포럼엔 젊은 연극인부터 중견연극인, 중도적인 사람들도 있다”며 “연극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 사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밝혔다. 포럼은 지난 17일 “예술위 검열 사태, 무엇을 할 것인가” 긴급토론회를 열었고 성명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정치적 검열을 비판하고 있다.

서울연극협회도 “적극적으로 투쟁할 것”이라 밝혔다. 임선빈 사무국장은 “언론과 국감때문에 수면위로 올라왔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이명박 정부 때부터 블랙리스트 얘기는 공공연히 나돌았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대놓고 보복하고 압박하는 게 두드러질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술계, 음악계, 무용계, 학계 너나 할 것 없이 정부가 지원기금으로 ‘갑질’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 국장은 “정부가 입장을 바꿀 때까지 장기적으로 싸울 것”이라며 “창작기금 뿐만 아니라 공공기금 심사를 상시적으로 감시하는 기구와 자정작용을 돕는 민간기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10월 초 쯤 문화연대, 문화협단체들과 협의를 해 나갈 예정이고 한 목소리를 내는 단체를 만들 것”이라 말했다.

극작가들도 행동에 나섰다. ‘검열을 거부하는 극작가들’ 모임 결성을 주도한 김은성 극작가는 “사회적 사안으로 연극계 작가들끼리 모이는 건 처음”이라며 “검열은 작가 손목을 꺾겠다는 건데 가만히 앉아 글만 쓰고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현재 70여 명 정도가 모였고 앞으로 더 참여할 것”이라며 “극작가들이 지속적으로 모여서 공연이든 성명서든 뭐라도 해 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송갑석 사무국장도 “예술 사전 검열을 용인할 수 없다”며 연대성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연극계에서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서울변방연극제 이경성 감독은 “상식적으로 너무 말이 안돼 예술인들 의견은 거의 일치한다”며 “앞으로 어떤 프레임과 전략으로 싸울지 고민하고 지속적으로 투쟁할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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