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헌재)가 지난 19일, 통합진보당(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이후 공안정국이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헌재 결정 직후 ‘진보당 해산 국민운동본부’는 이정희 전 진보당 대표와 전직 의원 5명, 당원 10만여명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여당도 이런 분위기에 합세했다. 지난 22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집권만을 위해 진보당과 연대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종북과 헌법 파괴를 일삼는 낡은 진보세력과 절연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헌재의 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일각의 불복에 대해 걱정스럽다”며 “이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같은 날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시민단체 ‘코리아연대’ 사무실 과 공동대표 이모씨와 회원 9명의 주거지 등을 국가보안법(국보법) 위반 등의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적단체로 규정된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와 연계해 연방제통일 및 국보법 철폐 투쟁을 전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이들은 인터넷 카페 등에 북한의 선군정치를 옹호·찬양하는 내용의 글을 제작·반포한 혐의와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 조문 목적으로 공동대표 A씨를 밀입북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코리아연대 관계자는 “집회나 기자회견을 하다보면 여러 단체가 모일 수 있는데 경찰이 그것을 빌미로 짜맞추기 수사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데 대해 “국보법 적용대상은 오래전부터 지적됐지만 자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이기 때문에 경찰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압수수색을 진행했는지 모르겠다”며 “박근혜 대통령 자서전에도 북한을 찬양고무한 부분이 있으니 수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 지난22일, 서울지방경찰청이 시민단체 코리아연대 사무실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하고 있다. (사진=JTBC 보도화면 갈무리)
 

 

서울지방경찰청은 22일 코리아연대와 동시에 민통선 평화교회 이적 목사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 세 곳도 압수수색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목사는 지난해 11월 독일내 친북성향 단체인 ‘재독일동포협력회의’ 주최 세미나에 참석해 북한 ‘조국통일연구원’ 부원장과 접촉하고, 토론회에서 “애기봉 등탑점등은 남측 대북심리전” 등의 발언을 해 북한 주장에 동조 및 이적문건 제작·반포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날 동시에 진행된 두건의 압수수색에 위해 진보당 해산 결정 다음날인 20일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군이 애기봉 트리 비난에 대해 민간의 애기봉 등탑 설치와 점등식 관련 논의를 심리전으로 왜곡하고 ‘무자비한 보복’과 ‘초강경대응전’을 운운하면서 위협한 것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적 목사는 “국방부 대북심리전술부서에서 민간인 보수기독교 단체에 애기봉 성탄트리 설치와 같은 대북심리전을 위탁하기도 한다”며 “이번 압수수색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애기봉 등탑을 설치하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보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기총은 지난 18일 평화단체와 주민들이 불안감을 남북 관계 불안감을 조성한다고 반발하자 애기봉 성탄트리 설치를 철회하기로 했다.

독일 세미나와 관련해 이 목사는 “장경욱 변호사와 내가 참여한 세미나는 주제가 한반도평화였다”며 “한반도 평화에 관심있는 세계적인 석학이 다 참여한 것을 친북활동이라고 억지로 몰아붙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식이라면 외국 나가서 밥먹는데 옆 테이블에 북한 사람이 있어도 국보법 위반이겠다”며 비판했다. 

경찰은 같은 날 독일에 함께 갔던 장경욱 변호사에 대해서도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장 변호사는 이석기 전 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의 변호를 맡았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보위사 직파간첩 사건 등에서 피고인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적 목사는 “이번 압수수색은 나를 압박해 평화운동자체를 막으려는 의도”라며 “대북전단 살포나 애기봉 등탑 반대는 남북관계를 깨뜨리는 행위라고 북한이 주장하기 전부터 내가 주장했던 사안이고 북한 주장에 동조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진보·평화인사들을 탄압하려는데 처음으로 장 변호사와 내가 걸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진보당 해산 결정과 압수수색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지방경찰청 보안2과 김남웅 경감은 “오랜기간 수사를 진행해온 사안이고 압수수색 착수 시점을 하루이틀 사이에 갑자기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며 “진보당 해산과 관련해 공안분위기로 몰아가는 식으로 표현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코리아연대와 민통선 평화교회 이적 목사가 혐의를 부인하고 무리한 압수수색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조사를 해서 규명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김 경감은 “진보당 해산 여부를 경찰이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설사 시기를 맞췄다 하더라도 공안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비판은 경찰 조직 내에도 상당히 부담을 주기 때문에 시기를 맞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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