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당은 수도에 소재해야 하고, 5개 이상의 특별시나 광역시·도에 1000명 이상의 당원을 가진 시·도당을 둬야만 정당으로서 정치 활동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현행 정당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당 등록 요건이다. 이 법에 따르면, 예를 들어 제주도에 사는 한 시민이 선거보조금을 받으며 도의원에 출마하기 위해선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과 맞지 않더라도 서울에 중앙당이 있는 전국정당 당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아니면 위의 조건에 해당하는 신당을 창당하는 수밖에 없다. 제주도의원에 출마하는데 부산, 전남 등에도 시·도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정당법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1961년 박정희 정부가 쿠데타 이후 필요에 따라 이 법을 만든 후, 전두환 정부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용됐으며 민주화 이후에도 기득권 정당들의 필요로 보존돼 왔다고 주장했다.

서 위원은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왜 전국 규모의 정당만 허용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서 “1961년 5·16쿠데타 후 박정희 세력은 모든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금지시킨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헌법과 정치관계법을 새롭게 만들고,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를 통해 공화당을 만들어 민정이양을 준비했다”면서 “1962년 헌법개정안과 함께 쿠데타 세력이 공들여 만들어낸 창조물이 바로 정당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활동금지법’으로 모든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막은 상태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창당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쿠데타 세력들이었다”며 “공화당 창당 작업을 완료하면서 기존 정치인 일부에게 선별적으로 정치활동 금지조치를 풀어 소위 ‘관제야당’ 창당을 허용하고 진행한 것이 1963년 민정이양”이라고 말했다.

   
▲ 사진=데모당(데모가 희망이다) 공식 페이스북.
 
아울러 서 위원의 주장에 따르면 전두환 정부 역시 1980년 5.17쿠데타 직후 기존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했고, 국회의원 선거를 하기 전에 선거법과 정당법을 손질했다. 전두환 정부는 박정희 정부가 만든 정당법에 2% 이상 득표를 못 하면 강제해산시키는 조항을 삽입했다. 이 조항은 만들어진 지 34년 만에 지난 1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폐지됐다.

서 위원은 또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권위주의 정권하에 전국조직을 갖춘 정당들이 새롭게 등장한 정치적 수요와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정치결사를 제한함으로써 민주화 이전 기득권 정치세력들만의 경쟁체제가 만들어지고 유지된 것”이라며 “민주화운동을 추동했던 세력들은 ‘젊은 피 수혈론’, ‘세대교체론’, ‘인물론’ 등을 통해 기존 정당에 개별적으로 흡수됐으며, ‘정당’의 이름으로 결집하지 못한 세력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팬덤(fandom)으로 파편화한 채 곧 실망으로 전환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좌담회에서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현행 정당법에 의하면 전국적 규모의 조직을 갖춰야만 정당으로 등록이 가능해 지역정당은 태생이 불가능하다”며 “지역에 뿌리내리고 지역주민과 밀접하게 교류하는 정당은 아예 존재조차 불가능하게 규정하는 것은 정치결사의 자유, 정당설립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역 민주화를 위해서는 지역패권주의에 기반을 둔 중앙정당과 그들의 각축장으로서 중앙정치에 종속된 지방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며 “전국정당들이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방선거에서의 ‘정당공천 배제’만으론 지방자치의 정치실종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으므로, 지방선거와 지방정치라는 제한된 공간과 층위에서 활동 가능한 대안적 지역정당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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