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독재를 미화하고 교육부의 전례 없는 수정 기회 등 각종 특혜 논란을 빚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가 전국에서 단 한 개교만 채택한 것으로 일단락돼가고 있지만, 정부·여당의 ‘국정화’ 움직임으로 여전히 역사교육이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참교육학부모회와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 교과서 검정무효화 국민네트워크 등 7개 단체가 주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는 지난 1월 교육부가 교과서 문제의 해법으로서 편수기능을 강화하고 역사교과서 발행체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이는 사실상 국정화를 의미하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이날 토론 발제를 통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교육부 검정 통과에 대해 “교육부 장관이 자격 미달자를 부정합격시키고 나서 다시 답안지에 맞을 때까지 고쳐주는 식으로 불량 교과서를 비호했음에도 그 오류와 왜곡은 충격적”이라며 “돌팔이 의사가 원숭이를 3개월 만에 사람으로 만들려다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을 만들어낸 꼴”이라고 비판했다.

박 실장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통과는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수구 정당과 조중동으로 불리는 수구언론, 그리고 뉴라이트 등을 자처하는 학자들이 합작한 10년에 걸친 역사 쿠데타의 정점에 서 있다”며 “이는 결코 학술적이거나 교육적인 목적이 아닌 특정 세력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교과서마저 정치적 도구로 악용한 심각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박 실장이 설명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 차원에서 건국절을 지정하고 ‘대한민국 건국 60년 기념사업’을 대대적으로 개최했으며 같은 해 5월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가 나오자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이 책을 ‘한국근현대사의 좌편향을 시정할 책’이라며 극구 칭찬했다.

박 실장은 그러면서 “2011년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이 ‘한국현대사학회’라는 것을 만들었고, 마침내 박근혜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이들이 만든 국사 교과서가 가볍게 검인정을 통과한 것”이라며 “자신들의 만든 교과서가 시장에서 버림받자 색깔론을 내세우며 국정화 또는 교육부 편수국의 부활을 통해 강제적으로 그들의 입장을 관철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서울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참교육학부모회와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 교과서 검정무효화 국민네트워크 등 7개 단체가 주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강성원 기자
 
양정현 부산대 역사교육학과 교수(한국역사교육학회장)도 “정치권력의 기획은 지난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라는 불량품 생산으로 귀결됐는데 이러한 책이 검정에 합격한 것 자체가 부실 검정의 결과이며 특혜 검정이 이뤄졌음을 보여준다”며 “정상적인 검정이 이뤄졌다면 이 책은 마땅히 불합격 처리됐을 것이고 우리 사회는 심각한 국론 분열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기에 이 사태는 교과서 ‘논란’이라기보다 정치적 배경이 깔린 소동”이라고 규정했다.

양 교수는 교육부의 편수(편집·수정) 기능 강화 방침에 대해서도 “정권이나 정부가 교과서의 구체적인 내용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이미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주무 부서인 교육부는 합리적인 절차를 마련하고 행정적인 지원에 그 역할을 한정할 때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의 단초가 마련될 수 있는데 한국사 교과서 파동은 권력이 교과서 서술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이라는 대의는 훼손됐고 역사적 객관성은 공염불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 교수는 “편수관 제도는 일제 강점기 이후 정치권력이 교과서 관리 감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기구로 학계에서는 편수제도의 부활을 국정제 논의와 동일한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다”며 “사실상 국정제 시행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이거나, 최소한 검정제를 준국정제 수준으로 운영하겠다는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자로 나온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부천여고 교사)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필자들과 보수언론은 교학사의 채택률이 ‘0’에 가깝게 나온 것을 두고 외압에 의해 교과서의 다양성이 훼손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를 디딤돌 삼아 교육부와 집권 여당은 편수 체제의 강화나 국정제로의 회귀를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어 교학사 교과서를 다양한 교과서 중의 하나로 봐야 한다는 논리가 학교에 적용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양 교수는 “교학사 교과서 사태는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교과서 품질의 문제이고 검정제의 잘못된 운영으로 통과된 교과서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이 선택한 결과의 문제”라며 “검정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자격 미달 교과서는 당연히 탈락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고, 교학사를 채택한 학교에서도 교장이 교사에게 압력을 넣는 등 진흙탕에서 어떻게든 해결 방안을 찾아 나가는 게 우리의 책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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