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전북 고창의 종오리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병한 후 불과 3주 만에 살처분된 오리와 닭의 수가 280만 마리에 이르면서, AI 초기 방역에 실패한 정부가 원인을 철새에게 돌리면서 소 잃고 외양간도 제대로 못 고쳤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6일 오전 환경운동연합과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동물자유연대 등 5개 환경·동물단체는 AI 사태에 대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농림부는 고창에서 AI가 발생한 초기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초동 방역에 실패했고 되레 ‘동림저수지에서 1000마리 철새가 떼죽음 당했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는 등 혼란을 불러 왔다”면서 “농림부가 쏟아 내는 많은 정보들은 교차해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각종 회의는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주장의 신뢰성을 검증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방재제의 성분과 영향에 대해서조차 공개하지 않는 농림부의 밀실 행정은 대책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을 넘어, 새로운 불신과 불안을 유발하는 원인”이라며 “자신들의 예방 실패와 대책 부실 책임을 떠넘기기에 안달하는 농림부를 견제할 수 있는 구조의 부재가 오늘 새로운 불신과 불안의 이유”라고 밝혔다.

   
지난달 22일 전북 부안군 줄포면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병지로부터 3㎞이내에 들어있는 한 오리농장에서 살처분 작업이 진행됐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달 28일 고병원성 AI의 유입과 확산 원인을 야생조류(철새)로 추정해 발표한 것이 AI 확산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들 단체는 “농림부는 비위생적으로 밀식 사육되는 가금류의 실태, 출처 불명의 외국산 사료의 영향, 종란이나 종오리의 수입 여부 등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고 처음부터 철새들에게 모든 책임(발생·확산)을 떠넘겨 왔다”며 “현재까지 닭오리 사육 농가 중 AI 양성으로 밝혀진 13건 중 철새로부터 감염된 경로를 밝힌 사례는 단 하나도 없어, 결국 AI가 전국으로 확산하는 데에는 철새를 탓하며 다른 전염 경로에 대한 조사와 대응에 소홀함을 보인 농림축산식품부의 무능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 단체는 AI 발병의 근본 문제는 공장식 밀집 축산 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근거로 “연구결과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공장식 농장에 유입되면 몇 시간 내에 고병원성 바이러스로 항상 변이했으며, 실제로 공장식 축산 농장에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유입돼 고병원성 바이러스로 발전한 경우는 이탈리아(1999), 칠레(2002), 네덜란드(2003), 영국령 콜롬비아, 캐나다(2004)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분변과 먼지, 톱밥이 쌓이는 비위생적인 공장식 축산 환경은 바이러스가 침범하는 순간부터 빠른 바이러스 진화를 위한 매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예방적 대량 살처분 방식에 대해서도 이들 단체는 “한국도 가입해 있는 세계동물보건기구(OIE) 규약에 따르면 동물 전염병 발생 시 살처분 과정에서 동물복지는 중요한 고려 대상임에도 국내 동물보호법 및 AI 긴급행동지침 상에는 도살 시 고통을 최소화하라는 지침만 나와 있을 뿐 살처분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동물복지 저해요인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2003년 국내에서 AI가 처음 발생하고 2~3년 주기로 4차례 AI가 발생하면서 총 2500여 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인도적인 살처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이어 “한국사회는 가금류의 대학살과 야생철새에 대한 학대에서 성찰하지 못하고 몇 년 후 똑같은 고통이 반복될 것 같은 데자뷔가 끔찍할 뿐이다”며 “오늘 조류들이 당하는 고난이 내일 인간의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더 키우게 해 동물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태도가 한국의 품격이고, 지속가능성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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