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장기(10일) 파업 국면을 맞고 있는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현수막이 박근혜 대통령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대구에서부터 시작해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대학생들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과 맞닿아 있어 또 다른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주목된다.

철도노조 파업을 지지하는 대구 시민들의 현수막 게시 활동은 지난 12일과 13일 대구 수성구 시지지역과 동구 반야월 지역의 다양한 주민 모임에서 처음 제안이 나온 후 개인 연락망을 통해 60명이 넘는 가족과 개인이 참여했다. 이들은 13일 밤 수성구 시지지역과 동구 반야월 인근 대로변에 60개가량의 현수막을 붙였다.

현수막은 철도노조 파업을 지지하는 내용으로 지나가는 시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응용해 재치도 뽐냈다. ‘잠시만요!! 달팽이 엄마 철도파업 지지하고 가실게요’, ‘철도 민영화 돼서 비싼 값으로 열차 타 봐야 정신 차리지?’, ‘철도파업 지지! 철도민영화 반대! 이건 제가 해볼게요..느낌 아니까!!^^’ 등 시민들의 자유로운 철도파업 지지 문구들이 지난 주말 대구 달구벌을 달궜다. 대부분 현수막이 14일(토) 오전을 전후로 철거되긴 했지만 대구 시민들은 14일에도 아파트단지와 공원 등에 현수막을 붙이는 열의를 보였다.

   
▲ 대구 시내에 걸린 철도노조 파업지지 현수막.
 
이번 현수막 활동에 참여한 수성구 주민 송광근씨(44)는 “철도파업이 시작되고 동네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철도파업에 대해 재밌게 의사표시를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고 각 가족이 플래카드 하나씩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며 “12일 오후부터 저녁까지 카톡으로 현수막을 달고 싶은 사람들을 취합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신청하면 다 못 걸 수도 있을 것 같아 24가구만 참여하게 됐는데 이후에도 참여의사를 밝힌 사람은 훨씬 많았다”고 말했다.

평소 정당 활동을 하거나 철도노조와 관련된 사람들이 아니냐는 의문을 불식하게 참여한 시민들의 나이와 직업, 목적도 다양했다. 수성구 시지지역에서 개인사업을 한다는 이옥희(38)씨는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 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나는 원래 이런 일에 대해 깨어있거나 시민운동을 했던 사람도 아니고, 사실 철도를 자주 이용하는 것도 아니지만 철도노조 파업의 근본적 원인이 민영화이기 때문에 이에 공감해 참여하게 됐다”며 “정부의 민영화 의도가 국민에게 신뢰로 다가오지 않고, 정부가 말하는 이유나 목적이 결국 서민의 목을 조르는 것으로 느껴져 사소하지만 이런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그러면서 “매스컴에서는 국민이 철도노조 파업 때문에 너무 불편하고 산업계 피해만 크게 보도하니까 국민은 철도노조 사람들이 왜 파업하는지 모르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며 “철도가 민영화 되면 인력감축으로 노동조건이 위협받을 수 있고 서민이 이용하는 철도 이용요금 인상으로 서민 피해가 예상되는데 다른 시민들도 같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대구 시내에 걸린 철도노조 파업지지 현수막.
 
‘반야월 자취남 1호’라는 이름으로 ‘불편해도 괜찮아! 국민재산 지키는 철도파업 지지해요~!’라고 현수막을 붙인 회사원 노지윤씨(32)는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정권 바뀌고 1년이 지나 현 정권의 큰 방향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시기에서 정부가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에 대해 국민의 의견이 제대로 표출돼야만 정부도 자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수막 게시 운동은 지금 국민이 정부 정책이 잘못 가고 있다는 우려의 방증이고 정부 마음대로 민영화를 진행하는 것을 제지하기 위해 이런 목소리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 정권의 지지기반인 대구에서 이런 활동들이 시작됐다는 점에 대해선 “물론 이런 활동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이런 목소리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이번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도 마찬가지”라면서 “개인들의 자발적인 펀딩으로 현수막이 제작했고 동네 안에 내 건 현수막은 의외로 오래 붙어 있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동네 이웃들을 통해 급조된 모임인 만큼 이들은 향후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이번 주까지 철도파업이 계속 이어진다면 2차 현수막과 대자보 등 시민들이 재밌게 참여하면서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활동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 대구 시내에 걸린 철도노조 파업지지 현수막.
 
다음은 현수막 활동에 참여한 대구 시민과의 주요 인터뷰 내용이다.

-이번 철도파업 지지 현수막 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이옥희(지호 도은네) : 이런 일에 대해 깨어있거나 그런 사람 아니다. 철도 민영화가 문제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현수막을 걸거나 용기 있는 사람 아니었다. 부모들이 모이는 카톡방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다가 딱딱하게 철도노조 파업 지지라고만 적으면 사람들이 식상해 하고 관심을 안 가질 것 같아서 개콘 유행어를 일부러 접목해 참여하는 분들도 재밌고 보는 사람들도 웃으면서 공감하며 받아들일 수 있게 문구를 정했다.

노지윤(반야월 자취남 1호) : 철도파업과 관련해서 굉장히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동네일에 관심 있거나 평소 주장을 표출하는 편이 아닌데 철도파업에는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느꼈다. 특히 이번 민영화처럼 공공재산을 사유화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평소 위기감이 크게 와 닿았다.

-본인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을 수도 있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 철도민영화뿐만 아니라 의료민영화 등 국가가 모두 민영화하고 어떤 식으로 보조해 줄 것인지 생각하면 화가 난다. 미국 같은 경우 의료민영화로 한번 병원 가려면 엄청 큰돈이 든다는 것을 주변에서 듣고 알고 있다. 이런 민영화를 시도하는 정부의 의도가 국민에게 신뢰를 가지고 다가오지 않는다. 이유나 목적이 결국 서민 목 조르는 것으로 느껴진다. 서민이 반발하는 목소리 낼 때마다 계속 짓눌리는 느낌을 받는다면 정부가 무슨 일을 하든 국민이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노 : 현 정권 1년이 지난 시기에서 정책의 방향이 시민의 요구와 맞지 않는데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당연히 제지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1년은 어쩌면 정권의 분수령으로 지금 국민의 반향을 보여주지 않으면 또 정부 마음대로 진행하지 않을까 우려의 방증이다.

-대구는 현 정권의 텃밭이기도 한데 의외다.
이 : 사실 직접 철도를 이용하는 젊은 후배 중에는 파업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서도 파업 원인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고,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도 이런 내용에는 어두워 현 정부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대구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이 겉으로만 봐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누군가 먼저 나서기만 한다면 기꺼이 따라 그런 한목소리를 낼 것이다. 먼저 나서는 사람 없을 뿐이지 마음 속으로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누군가 그런 제안을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말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노 : 아무래도 불편해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면 흔쾌히 참여하기도 하고 이번 현수막도 전원이 그렇게 참여했다. 현수막 제작 비용도 개인들이 걷어서 재밌게 했고 현수막 달러 다닐 때 주민이 많이 나왔다. 현수막 게시가 사실상 불법이므로 뜯어져도 별수 없다 생각해 주말까지만 붙어있길 바랐는데 의외로 오래 붙어 있어 당황도 했고 다행스러웠다.

-현수막 게시 후 주위 반응이나 앞으로 활동 계획이 있다면?
이 : 이번 현수막 활동이 뉴스로 퍼지게 되면서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우리끼리 한 조그만 운동이 알려지면서 이런 것도 힘을 발휘할 수 있구나 느꼈다. 개인적으로 시간이 나면 내용들을 적어 1인 시위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이 일을 계기로 아는 분들이 다 같이 힘을 합하면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번 현수막에 참여 못해 아쉬워 한 사람도 많았다.

노 : 지금 당장은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데 시민들의 중요 특징이 쉽게 쉽게 할 수 있는 게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제안하고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다면 언제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 대자보나 현수막은 어렵지 않게 참여할 수 있어 더 생명력이 있는 것 같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