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을 ‘박근혜씨’라고 부른 것에 대해 새누리당과 일부 언론이 ‘예의’가 없다고 비판했지만 ‘씨(氏)’라는 호칭이 오히려 ‘대통령’보다 더 정중한 칭호라는 게 학자 등 국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앞서 새누리당은 이정희 대표와 정청래 의원의 ‘박근혜씨’ 발언에 대해 “국가 지도자에게 막말을 뱉어내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도 갖출 줄 모르는 것”이라며 “기본 인성도 갖추지 못한 발언 때문에 국회의 위상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문화일보도 지난 11일자 사설에서 “‘씨(氏)’ 자체는 좋은 표현”이라면서도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존칭이나 경칭으로는 사용하지 않아, 더 이상 대통령으로 부르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는 식으로 비치기에 충분하다”고 몰아붙였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씨는 본래 높임말이지만 언젠가부터 윗사람 아닌 동료나 아랫사람에 대한 경칭으로 쓰인다”며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예의를 갖추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자세”라고 지적했다.

   
▲ 13일 TV조선 뉴스9 갈무리
 
이에 대해 강상헌 우리글진흥원장은 1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대통령을 ‘각하(閣下)’라고 부르던 관습 때문에 자칫 권력 관계에 반하는 호칭으로 들릴 수 있지만 대통령 이름 뒤에 ‘씨’는 비하가 아닌 존칭으로 봐야 한다”며 “오히려 대통령이란 말에는 존경의 의미가 없고 실용적인 뜻만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을 부르는 호칭은 독재 정권 시절부터 ‘각하’가 관례였다. 1993년 들어선 문민정부에서도 ‘김영삼 각하’였다. 그러다 국민의정부 시기에 김대중 대통령이 “앞으로 각하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부터 ‘대통령’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외국의 경우 영국에서는 여왕에 대해 ‘허 매저스티(Her Majesty·여왕 폐하)’라는 칭호를 붙이기도 하지만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Mr. President’라거나 ‘Mr. Obama’라고 부른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 역시 박근혜 대통령을 ‘Ms. Park’이라고 쓰고 있다.

강상헌 원장은 “국민을 섬기는 공복(公僕), 즉 공무원의 현재 대표가 대통령인데 국민의 한 사람이면서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의원이 공복을 부를 때 어떻게 불러야 제 격이겠는가”라며 “대통령뿐만 아니라 장관 등을 아무개씨로 부르는 것을 격하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버릇은 이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표준 화법 해설(1992)에는 “방송에서 초청 인사를 소개하는 경우에는 누구나 ‘OOO 씨’라고 하는 것이 표준이고, 다만 연로한 초정 인사인 경우에는 직함이 있으면 직함을 붙여 ‘OOO 선생님, OOO 교수, OOO 사장’ 등으로 소개하는 것이 사회자의 연령 등에 비춰 자연스럽다”고만 설명하고 있다.

국어학자 출신인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국어 문법적으로도 사람의 이름 뒤에 당연히 씨를 붙이는 것은 안 붙이는 것보다 존경의 뜻을 가진다”며 “이정희 대표가 정당해산 청구 등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볼 때 오히려 그 정도 표현은 상당히 자제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문과 출신의 우상호 민주당 의원도 “박근혜 정부 들어서 유독 호칭과 칭호에 예민한데 대통령이 왕정시절 신성불가침도 아니고 새누리당이 지나치게 신격화하는 것은 권위주의 독재정권의 잔재이고 자신들의 충성심을 포장하려는 과민반응”이라며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노가리’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박근혜씨 정도로 문제를 삼는 것은 그럴 말할 자격도 없고 너무 치졸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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