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천영육아원에서 원생들에게 생마늘과 청양고추를 먹이고 장시간 독방에 감금하는 등 상습적인 가혹 행위 등 아동학대를 저질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처음 평소 해오던 대로 일회성 보도에 그칠 것인지 고민했다. 하지만 인권의 사각지대인 보육원에서 사회의 무관심 속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신음하고 있는 아동들의 눈동자가 나를 깨웠다.

예상처럼 대부분 언론이 일회성 보도를 하고 끝냈지만 난 방송 리포트에 필요한 그림이 별로 없고 가장 작은 지역국이라는 열악한 제작 여건을 탓하지 않고 취재의 밀도를 채워 나갔다. 1분 20초 리포트에 익숙해 호흡이 긴 취재가 힘들고 낯설기만 했던 나의 나약함 등을 탓하며 치열하게 싸우는 시간이었다. 해당 보육원은 ‘벽안의 어머니’로 지역 사회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미국 여성 선교사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이국땅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50년 동안 갈 곳 없는 고아 1234명을 길러냈던 곳이다.

몇 장의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인권위가 직권 조사한 결정문 전문을 확보해 분석했다. 그 결과 ‘제천판 도가니’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해당 시설은 처음부터 인권위의 조사 결과가 잘못된 것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훈육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고 많은 아이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일부 언론은 그들의 편이 되어 주었다. 오래된 기억과 불명확한 진술도 적지 않아 사실 관계를 따지는 팩트와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영화 이끼처럼 지역 정서 등 모든 것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묘하게 얽혀 있었다. 상식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됐다. 실타래는 감으려고 할수록 점점 꼬이기만 했다.

아동학대는 물론 종교를 강요하고 시설 내 남자 생활지도교사와 교회 집사 등이 아동을 대상으로 성 학대를 하는 등 모든 광범위한 성폭력이 시설에 존재했다. 일부 군대처럼 폭력이 일상화된 것이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과 옷들을 살피자 방임과 정서학대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자체는 행정처분을 미루면서 시설을 감싸줬다. 때문에 보육원의 아동학대 실태를 추가로 고발하고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구조적인 문제점,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 감독 소홀과 직무 유기 등에 허점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냈다. 이후 시민사회단체 등의 기자회견과 성명 발표가 잇따랐지만 그들은 여전히 당당했다.

최근엔 송광호 새누리당 의원과 최명현 제천시장이 보육원을 감싸며 인권위 조사 결과까지 부정하고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등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도 취재해 고발했다. 서울과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등은 즉각 사과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들은 침묵했다. 보육원 아동들은 시설병에 걸려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

교사들이 ‘원장과 가족의 작은 왕국’이라 불렀던 이 보육원에서 정작 보육교사는 교사라는 호칭도 듣지 못하고 철저히 ‘을’이었다. 교사의 지나친 업무 강도와 열악한 처우도 아동학대를 부추겼다. 원생들이 수십 년 넘게 다니던 인근 초등학교는 원생 20명이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10년 넘게 이어졌다는 상습적인 아동학대를 단 한 번도 의심하거나 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런 학교의 무관심도 아동학대를 부추겼다는 불편한 사실이 가슴 아팠다. 세심하게 아이들을 보살펴 주는 사람들은 찾기 힘들었다. 제천시는 해마다 12억 원이 넘는 보조금을 지원하면서도 아동들이 야산에 버려지는 등 지나친 체벌을 받고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되기도 했다는 민원을 여러 차례 접수받았지만 애써 외면했다.

해당 시의회와 시민사회단체들도 KBS가 고발한 아동학대 신고를 묵살한 공무원을 징계하고 해당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지정 취소와 시설 폐쇄를 촉구했다. 제천시는 결국 뒤늦게 시설장 교체라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해당 시설은 이에 앞서 오히려 자진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또 인권위 권고 취소 소송과 행정 처분 취소 소송 등 각종 소송을 제기하며 맞서고 있다.

   
▲ 이정훈 KBS 기자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와는 달리 부모에게 버림받은 죄밖에 없는 아이들이 겪는 보육원 아동학대는 세상이 철저히 무관심했다. 취재를 하면서 생각보다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에 무력감도 들고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항의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죄라는 좌우명을 되새겼다. 인권위 조사관한테 꾸준한 관심과 용기에 고맙다는 내용의 메일이 왔다. 관련 내용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계속 지역 사회에서 공론화를 시켜 경찰이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 고맙다고 말했다. 내부 고발자인 해당 보육원 교사들과 아이들이 날 일으켜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떨까? 우리 사회에는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 악당이 너무 많다. 선한 자가 강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고 떠들어 대는 우리 사회가 아직 인디언 사회보다도 훨씬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아직 멀었다.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우리 옆에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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