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3000억 원 규모의 한국의 3차 차기전투기(F-X) 사업 입찰에서 록히드마틴(F-35A)과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유로파이터 타이푼)이 사업비 초과로 사실상 탈락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두 곳은 이를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18일 F-X사업 가격입찰 관련 결과를 발표하며 “기종별 입찰가격을 분석한 결과 A기종(유로파이터 타이푼)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 초 협상 과정에서 상호 합의한 조건을 임의로 변경해 이를 근거로 가격을 제시한 것이 확인됐다”며 “입찰 과정에서 합의된 조건을 임의로 변경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총사업비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방위사업청은 최종 입찰에서 총사업비 8조3000억 원을 초과한 경우엔 차기 전투기로 선정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백윤형 방위사업청 대변인은 20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도 “입찰 규정상 한 입찰자가 두 개의 제안을 할 수 없고, 최종적으로 마지막에 제안한 내용은 기존의 협의 내용에 없는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유로파이터의 결격 사유는 기존의 협의된 제안 내용을 가지고 판단했을 때 유효한 입찰 제안이 총사업비를 초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EADS가 총사업비를 맞추기 위해 최종 제안한 내용이 합의 위반이라는 방위사업청의 결정은 명확한 기준 없는 불공정한 잣대라는 반론도 나왔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18일 F-X사업 가격입찰 관련 결과를 발표하며 유로파이터 타이푼(사진)의 유효한 입찰 제안이 총사업비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사진=유로파이터 타이푼 공식홈페이지
 
유로파이터 관계자는 20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정부가 요구한 안 중에서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고 최종 계약 전까지 복좌기(2인승 전투기) 대수 등을 조정해 가격을 낮추는 것도 협상의 과정”이라며 “얼마든지 협의의 여지가 있는데 방위사업청은 일요일 오후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우리에게 미리 통보한 적도 없어 억울한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F-X사업의 원점 재검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처음부터 F-35A 도입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사업안 부결을 위해 일부러 유로파이터를 탈락시킨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방위사업청은 이번 F-X 사업에 개발이 끝나지 않은 록히드마틴의 F-35A를 미국 정부의 대외군사판매(FMS) 거래를 통한 경쟁기종으로 받아줬고 비행테스트를 거부하는 것도 용인해 부실평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F-35A는 이번 가격 입찰에서도 총사업비를 초과해 사실상 경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록히드마틴은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한국 정부로부터 아직까지 F-X 가격 입찰 결과에 대한 공식적인 통지를 받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한국에 F-35A를 제안한 미국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F-35A의 경우 지난 이명박 정부 때부터 차기 전투기를 스텔스기에 맞춰 놓으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력 기종으로 꼽혀 왔으며,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 미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방위산업계 한 관계자는 “보잉사의 F-15SE는 설계도면 상에만 존재하는 전투기로 시제기조차 없는 상태이고, 예전 복좌기 모델로 군수유지비도 많이 들어 아마 최종 종합평가에서 1등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사업비 안에 두 기종이 들어오면 두 개 중 하나를 선택 할 수 없는 명분이 없는데 유로파이터를 탈락시킨 것은 결국 사업을 연기해 F-35A를 도입하려는 숨은 의도가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희우 충남대 군수체계종합연구소장은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방위사업청이 정말 국익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미국 기종이든 유럽 기종이든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유로파이터가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면 스텔스 기능의 첨단 전투기 확보와 공군의 전력 공백을 매우는 것, KF-X 기술이전이라는 세 가지 목적을 충족하는 사업 기준을 명문화해 혼란을 없애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F-X 사업의 원점 재검토 가능성에 대해 백윤형 대변인은 “가계약을 한 기종에 대해선 모두 평가할 수 있고 이 중 한 개 기종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 올라가면 최종 채택 여부는 방추위에서 결정하게 된다”며 “방추위에서 원안을 부결할 수도 있어 만약 부결된다면 사업공고에서부터 예산 승인 등 모든 절차가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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