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태 당시 관계된 군 관계자와 천안함 유족들이 천안함 침몰사고와 관련한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국가기관인 국방부가 깊숙히 개입하며 ‘과잉’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천안함 유족들은 영화를 보지 않은 채 국방부측의 설명만 듣고 가처분 신청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관계자와 유족들에 따르면 이번 영화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은 국방부가 주도적으로 준비해 왔으며 국가기관은 명예훼손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대신 개인과 유족들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영화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의 정지영 감독이 기획 제작하고 백승우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지난 4월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처음 공개된 이후 이달 중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영등위) 심의를 거쳐 다음 달 초 개봉을 준비 중이다.

최원일 전 천안함장을 비롯한 군 관계자와 이인옥 천안함유족협의회장 등은 지난 7일 정지영·백승우 감독과 정상민 아우라픽처스 대표를 대상으로 영화상영금지 가처분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인옥 회장은 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전주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족들은 영화를 보지 못했고 해군에서 내용을 알려줬다”며 “해군 관계자 몇 사람이 영화제에 직접 가서 두 번에 걸쳐 영화를 보고 모니터링한 후 유족들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며 설명해 줬고, 내용을 살펴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해군과 같이 가처분신청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가처분신청 이유에 대해 “물론 영화는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다큐멘터리라는 표현은 사실에 근거한 영화라는 것이고 영화 자막을 통해서도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내용이 없었다”며 “영화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의혹을 제시해 국민들이 이런 왜곡된 내용까지 잘못 받아들인다면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영화 <천안함프로젝트>의 포스터.
 
국방부 역시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이후 법적 검토에 들어갔으며 국가 기관이 영화에 대해 가처분신청을 하면 승소할 가능성이 낮고,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인 전례가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해 영화 상영을 막는 방안을 강구했다.

임천영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가 기관은 명예훼손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당시 천안함 관련자들과 유족들에게 법률적 지원과 법원 자료 제출을 도와주고 있다”며 “영화가 상영되면 국민이 정부의 발표를 불신하게 될 수 있으므로 국방부는 당연히 가처분신청에 대해 같은 입장이고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방부가 대변인을 통해 영화 상영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표시를 했음에도 영화 제작사가 상영하겠고 해서 사법적 판단을 받기 위해 가처분신청을 하게 됐다”며 “재판부가 가처분신청 기각 판단을 내리면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방부가 천안함 프로젝트 가처분 신청을 주도한 것은 일종의 '사전검열'로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누겠다는 전근대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전주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였던 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주류 언론에서도 입을 닫았고 일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됐던 천안함 사건에 대해 천안함 프로젝트는 오히려 저널리즘의 역할을 대신했다”며 “형식적인 욕심을 버리고 친절하게 사건의 전후 맥락을 따져보려 했던 영화에 대해 상영금지 신청을 한다는 것은 정부 발표를 그대로 믿으라는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정부의 주장에 얼마든지 반대와 다른 주장이 나올 수 있고, 이에 정부는 실증 자료를 내놓으면서 반박을 하면 되는데도 영화 개봉 자체를 막는 것은 군사독재 시절의 검열적 사고”라면서 “정부가 취재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 법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국제적 망신”이라고 말했다.

9.11테러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2004)에 대해서도 미 정부는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법원에서도 정부 측의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천안함 프로젝트와 같은 주장은 다른 언론이나 인터넷 등의 공론장에서 모두 제기됐던 내용인데 영화상영금지는 이들 언론의 기사를 못 나가게 내리고 사이트를 폐쇄하라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며 “상영금지 신청 자체가 비상식적인 일인데 법원에서도 이 같은 과잉 검열에 대해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고 내다봤다.

최종한 세명대 방송연예학과 교수는 “천안함 프로젝트가 방송의 시사보도 프로그램과 같은 성격이라면 가처분신청이 이해가 가겠지만 배우가 나와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에 대해 가처분신청을 내는 것은 올바른 접근 방식이 아니다”며 “문화와 영화는 거기에 맞는 대응을 해야지 시사프로그램과 같은 방식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어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 잡스가 그렇게까지 훌륭한 사람이라고 100% 믿지 않고, 영화 ‘부러진 화살’도 실제 사건을 영화화했지만 영화 개봉 이후 상황이 왜곡된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영화가 사실에 접근하는 다양한 관점과 방식을 제공하고 있고 관객들도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는데 영화를 틀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군사정부나 후진국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정부의 법적인 접근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천안함 프로젝트도 영등위 심의를 받고 국가에서 정하는 심의법에 따라 규제를 받는데 거기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상영금지신청은 상위법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영화가 불량식품도 아니고 관객이 돈을 주고 영화를 볼 권리 자체를 막는 것은 문화산업에 대한 몰이해”라고 비판했다.

표현의자유와 언론탄압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8일 성명을 내고 “영화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인들은 명예훼손을 이유로 들었지만 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알권리는 명예훼손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국민은 천안함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고, 진실이 무엇인지 영화를 보고 소통하고 토론하며 판단을 내리는 것은 국민의 몫이지 영화 상영을 금지하는 정부의 몫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인옥 천안함유족협의회장과 일문일답 내용이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가처분신청은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 이후에 하려고 했는데 영화가 정식으로 상영하겠다고 해서 신청하게 됐다. 전주영화제 때는 심의를 거치지 않은 출품작이었기 때문에 영화가 정식으로 개봉하게 되면 가처분신청을 하자고 변호사와 얘기를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 영등위 심의를 받는다고 해서 법원에 가처분신청서를 냈게 됐다.”

-국방부와 함께 가처분신청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주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족들은 영화를 보진 못했고 해군 관계자 몇 사람이 영화제에 직접 가서 두 번에 걸쳐 영화를 보고 모니터링을 했다. 아마 국방부에서도 영화를 보러 간 것으로 알고 있다. 해군에서 영화를 모니터링한 후 유족들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며 설명해 줬고, 내용을 살펴보니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해군과 같이 가처분신청을 진행하게 됐다.”

-최원일 전 천안함장과도 함께 신청하기로 이야기된 건가?
“최원일 함장도 유족회와 같이 가처분신청을 하기로 평소 얘기가 됐었다. 영화가 심의를 통과하면 영화사를 잡아서 개봉할 수 있으니 미리 준비를 했었다. 국방부에서도 나름대로 군에 대한 자료를 최대한 제공하고 천안함 백서에 나와 있는 내용과 유족회에서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영화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가처분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영화는 표현의 자유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다큐멘터리라는 표현한 썼기 때문에 사실 근거한 영화라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왜곡된 내용까지 국민이 잘못 인식하면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영화 자막에도 사실에 근거했지만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내용 없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의혹을 제시했다.”

   
이인옥 천안함유족협의회장
©연합뉴스
 
-국방부에서는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기각하면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것까진 아직 생각 안 해 봤다. 우리는 법원에서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처분신청이 기각되면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할 건가?
“가처분 신청 외에도 변호사에게 손해배상 비용으로 얼마씩 한다는 내용을 모두 냈다. 법원에서 가처분 결정이 안 받아들여진다면 변호사와 상의해 손해배상 소송까지 갈 수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