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불법 공개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에 전국의 역사학자들도 동참했다. 

한국역사연구회를 중심으로 한 전국의 역사학자 233명은 4일 오전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국민에게 드리는 격문(檄文)’을 발표하며 “국정원의 정치공작은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범죄이며, 군사독재 시절의 중앙정보부와 안기부가 공화당, 민정당과 함께 민주주의를 유린하던 상황을 방불케 한다”며 “우리 역사학자들은 오랜 기간 많은 국민의 숭고한 희생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집권세력의 연이은 불법행위로 대한민국이 정상궤도를 벗어난 현실을 목격한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이 모든 불법과 정치공작의 근원이자 권력을 사유화해 정략적으로 이용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함께 법정에 세워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정치공작과 주권 교란에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각종 불법 행위의 암묵적 수혜자로만 남아 정통성에 타격을 입고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촉구했다.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 공개한 것에 대해 이들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국정원법과 선거법을 어기며 정치 공작을 펼친 1차 범죄에 대한 비판 여론을 모면하기 위해 국가적 불이익이 예상됨에도 전문을 공개해버리는 반국가적 2차 범죄까지 저질렀다”며 “국회가 지난 2일 국회에서 대화록 원문 열람과 공개를 표결한 것도 법정신을 훼손하는 부당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국정원은 선거 때는 물론 등록금 문제 등 사회적 현안마다 여론 조작을 일삼았고, 공작을 통해 정치적 경쟁자의 무력화를 기도했으며, 급기야 대선에까지 깊이 개입해 선거 공정성을 훼손했다”며 “심지어 국가 최고 비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까지 왜곡 편집해 새누리당과 함께 선거운동에 활용했다”고 비판했다.

   
▲ 국정원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에 모인 시민들.
ⓒ이하늬
 
역사학자들은 현행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반영된 역사적 전통과 교훈도 설명했다. 이들은 “조선시대에 사관(史官)이 작성한 사초(史草)는 그 누구도 보지 못했고, 내용을 발설하거나 변조하면 엄벌했다”며 “군주는 자신의 언행이 기록됨을 의식해 행실을 삼가고, 사실을 기록하는 자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올바른 역사기록이 남는다는 원칙 때문에 조선의 세종은 태종실록을 열람하려다가 끝내 그만뒀다”고 밝혔다.

이들은 NLL 관련 대화록을 왜곡 전달한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에 대해서도 “다수 국민과 외신들도 이해하는 순 한글 문서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문맥조차 제대로 독해하지 못한 채 정략과 선동의 소재로 활용한 무지와 무모함에 아연실색했다”며 “국민을 ‘어리석은 무리’로 간주하고 벌이는 집권세력과 수구언론의 거짓 선동이 빚어낼 결과는 참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사학과 교수)은 4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학회에서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다가 이번 대화록 전문이 공개된 일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회의를 거쳐 연락을 돌린 결과 36시간 만에 233명이 참여하게 됐다”며 “집권세력의 불법 행위에 역사학자들도 국민의 일원으로서 국민주권 유린, 국기 문란의 엄중한 책임을 묻기 위해 국민에게 드리는 격문 형식을 취했다”고 밝혔다. 

   
▲ 국정원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에 모인 시민들.
ⓒ이하늬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