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과 민주주의 위기를 규탄하는 시국선언 등 전국민적 반발이 확산되면서 국가기관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론이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선거 결과에 미친 영향과는 별개로 국헌을 문란하게 한 ‘현대판 부정선거’라는 지적이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국가기관이 선거 과정에 개입하는 활동을 했다는 것은 민주주의 헌법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국정원이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형성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다수 의견에 영향을 받는 유권자들에게 편향적 여론 구조를 만들었으므로 1960년 3·15 부정선거의 현대판”이라고 비판했다.

오 교수는 “우리의 민주주의의 기준은 사회의식이 발전하면서 훨씬 높아졌기 때문에 3·15 부정선거보다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며 “실제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쳤는지보다 국가기관이 정권 창출을 위해 특정 정치세력의 사적 도구가 된 활동은 공권력으로서의 공정성의 상실이자 헌법 질서의 무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선거 공정성의 책무는 우선으로 국정의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있고 국정원은 정부조직법상 대통령 소속으로 내각 통제를 받기 때문에 대통령은 비밀기관 문제에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드러난 것만으로도 정치적 사과와 함께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국정원장에게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려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지난달 24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국정원 선거·정치개입을 규탄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하늬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정원의 선거 개입 혐의는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대부분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며 “국회에서 국정조사도 하겠지만 언론에 보도된 증거나 여러 정황을 봤을 때 국정원 선거개입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는 것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정원과 같은 국가기관이 특정 정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국가기관의 권한을 오남용 한 것은 헌법 정신을 위배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모든 국가기관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는데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등 정치활동은 헌법에서 규정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정면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국정원 선거 개입은 하위법상으로도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등에 의해 처벌받아야 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며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 법원 판결이 성실히 이뤄져야 하고 국민적 의혹에 대한 입증으로 진실을 밝혀 관련자들을 엄단해야 위헌·위법적인 국가기관 선거 개입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이 위반한 공직선거법 제9조 1항(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명시한 우리나라 헌법 제7조의 정신을 법리적으로 모두 담고 있기 때문에 헌법 정신 훼손은 당연하다는 견해도 나왔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국정원이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개입하고 댓글을 단 것,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 흘린 것은 공직선거법 등 실정법 위반”이라며 “국가 권력이 스스로 선거 민주주의를 파탄해 헌법에 비춰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과업을 어긴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핵심적인 제도로, 비밀리에 활동하는 국가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은 선거 공정성을 해하기 때문에 정치의 핵심인 선거에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점이 드러나면 책임지고 사과하는 것은 당연하고 법적인 책임을 물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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