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폄훼하려는 움직임이 방송과 인터넷, 출판 시장까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종합편성채널(종편) 등 보수언론과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 같은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5·18 정신’을 훼손하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또한 최근 5·18 민주화운동을 무장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출간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관련기사] 5.18 앞둔 광주가 운다… 고인비하에 무장폭동 주장 책까지)

오는 18일 5·18 기념식을 앞두고 TV조선과 채널A 등 일부 종편은 잇따라 극우 논객들과 탈북 인사들을 패널로 초청하며 5·18 관련 ‘북한군 개입설’을 일방적으로 퍼뜨리고 있어 큰 반발을 사고 있다.

채널A는 지난 15일 오후 생방송 <김광현의 탕탕평평> 프로그램에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으로 남파된 특전사가 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방영했다. 하지만 정작 방송에서는 북한군이었던 당사자는 출연하지 않았다. 대신 탈북자인 이주성 한반도평화국제연합 대표와 ‘광주 학살이 북한 특수부대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지만원 씨를 변호했던 서석구 변호사가 패널로 나왔다.

   
▲ 15일 방송된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갈무리.
 
이 대표는 ‘남파 특전사 김명국씨가 왜 직접 나와 말하지 않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김씨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으며 언젠가는 다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며 “남한 정부 당국에서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도 했다”고 주장했다. 방송 중간 중간 뒷모습만 나온 김씨의 인터뷰가 삽입되긴 했지만 실체를 알아보기 어려웠으며 주로 이 대표가 김씨의 말을 대신 전달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김씨를 포함한 북한 특수부대원 50명은 1980년 5월 19일 오후 평양 부근에서 출발해 배를 타고 21일 새벽에 광주 인근 바닷가에 도착했다. 이후 김씨는 광주 시민군 행세를 했으며 작전을 마치고 후퇴할 때는 남한 특전사를 직접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 1월 16일 같은 방송 <이언경의 직언직설>에 출연한 지만원씨의 주장과 차이가 있다. 지씨는 이날 방송에서 “북한 특수군 600명이 5·18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10·26 사건 이후 잠수함과 땅굴 등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소규모로 내려왔다는 주장이다.

지난 13일 TV조선 생방송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도 임천용 전 북한 특수부대 장교가 출연해 지씨와 비슷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5.18을 전후로 북한 특수부대 1개 대대 약 600명이 광주에 내려왔다”며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고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라고 주장했다.

   
▲ 13일 방송된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갈무리.
 
이에 민주당은 14일 논평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왜곡하는 유언비어를 유포한 TV조선에 강력 항의한다”며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과거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 정권에 의해 유포됐던 유언비어들이 21세기에 탈북인사의 입을 통해서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대한민국이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민주항쟁에 대한 부정과 정신 훼손 행위는 마치 3·1운동 정신을 부정하고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노력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정체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행위이며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해당 프로그램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할 방침이다.

오동선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책임PD는 1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13일 방송은 5·18을 앞두고 준비한 것은 맞지만 5·18 정신을 훼손하려는 취지는 아니었다”며 “탈북 인사 임씨도 ‘게릴라’라는 표현을 썼지만 광주시민을 폭도나 깡패라고 하는 황당무계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 PD는 민주당의 공식사과 요구와 방통심의위에 심의 요청에 대해서는 “5·18 부상자회장과 김영진 전 민주당 의원과도 전화 취재해서 그 내용 중 핵심적 내용을 두 건 연이어 내보냈다”며 “진행자도 패널을 두둔하지 않았고 나름 도전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반박했다.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연출을 맡은 이길복 PD도 “15일 다룬 내용은 5·18 앞두고 이제까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의혹만 있었는데 의혹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언을 하는 사람의 나와서 기획하게 됐다”며 “당사자가 출연하지 않았지만 그분의 증언록을 바탕으로 한 방송”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의 증언이 신뢰할 만한 주장이고 제작진이 검증했냐는 물음에 이 PD는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방송으로 만들었다”며 “확실한 것은 탈북자 김씨가 북한군에 있었다는 것이지 그의 북한에서의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고 말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16일에도 북한 고위급 간부 등을 초대해 5·18 북한 개입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 지난 13일 일베 사이트에는 5.18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광주 시민을 비하하는 게시물이 집중적으로 올라왔다.
 
이와 함께 5·18유족회 등 5·18 관련 단체에 대해서도 일베 회원들을 중심으로 사이버 테러와 명예훼손이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18유족회가 법적 대응을 위해 수집하고 있는 명예훼손 자료를 보면 5.18 희생자 시체 사진을 두고 ‘홍어 말리는 중’이라고 비하하거나 희생자 관 앞에서 울고 있는 유족 사진을 보고 ‘홈쇼핑에서 배달될 홍어들 포장 완료’라고 하는 등 모욕적인 표현이 많았다. 여기서 불리는 ‘홍어’는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는 은어이다.

해당 게시물은 TV조선 방송이 있던 13일 집중적으로 게시됐다는 점에서 5·18 기념일을 앞두고 5·18 정신을 조직적으로 폄훼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남겼다. 16일 오후 2시 기준, 일베 사이트에 5·18과 북한을 연계한 게시글은 4000여 건, 댓글은 3000건에 달했다.

이에 대해 5·18 기념재단 측 관계자는 “초기에는 동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지만 사회 분위기가 5·18의 가치를 훼손해도 되는 것처럼 조성돼 앞으로는 홍보·교육 강화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2월까지 5·18 기념재단이 운영하는 추모 사이트에는 하루에도 많게는 300건에 가까운 5·18 민주화운동 비하 글이 올라왔으나 글쓰기 권한을 실명 인증 후로 바꾸고 나서는 익명에 기댄 악성 게시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한편 5·18 기념재단과 5월 단체 등은 국가보훈처에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요구했으나 보훈처가 이를 무시하자 기념식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추모곡 제정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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