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대기업과 보수언론이 소유하고 있는 대학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대학 강사들을 내쫓기 위해 공문서를 위조하고 ‘윗선’에서 임용에 간섭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낳고 있다. 이들 대학이 박사 학위가 없다거나 심지어 노조 활동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시간 강사 지위를 박탈했다는 비난이 나오면서 학생들 또한 비민주적인 수업권 침해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2011년 8월 11부터 ‘성균관대의 강사직 박탈 철회와 대학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해 637일째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류승완 박사(전 동양철학과 시간강사)는 대학의 부당한 강의배정 거부 등에 맞서 싸우고 있다.

류 박사는 2010년 2월 성대 동양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그해 봄 학기부터 강의할 수 있도록 박상환 유학대학 지도교수의 추천도 받았지만 학교측은 류 박사를 강사 선정 명단에서 제외했다. 성대의 강의 배정제도는 단과대 교수 전원의 만장일치로 추천해야 하지만 학교는 류 박사의 지도교수 승인 없이 ‘강의 배정 명단’을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은 지도교수의 직인까지 도용해 공문서도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0학년도 제4차 강사선정위원회 의결서’에는 류 박사의 지도교수인 박상환 교수의 직인이 찍혔으나 박 교수는 직접 찍은 일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0학년도 성균관대 유학대학 강사선정위원회 의결서. 아래 문건과 같은 지도 교수 직인이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2008학년도 성균관대 강사 배정 문건. 표시 부분이 류승완 박사 지도교수 직인.
 
박 교수는 8일 “나도 나중에 알았는데 당시 내가 없는 상태에서 학과 사무실에 있던 도장을 조교들이 허락 없이 찍었다”며 “이후 내가 하고 있던 과목 중 한 과목을 공동강의로 바꿔 후반부를 류 박사에게 강의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에 류 박사가 위조된 ‘강사선정위원회 의결서’를 근거로 교무팀에 항의한 뒤에야 학교 측은 류 박사에게 지도교수의 한 과목을 공동강의 형식으로 배정했다.

류 박사는 또한 학교로부터 2011년 2학기에도 강의 배정을 통보받았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곧바로 강의 배정이 취소됐다. 그는 그해 1월 22일 학부 강사 인사 담당자로부터 2학기 강의가 배정됐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으며 학과 조교도 강의가 배정됐다는 학교 측의 결정을 류 박사에게 메일로 전달했다. 그러나 사흘만인 1월 25일 다시 조교로부터 “학교 측에서 강사배정을 거부하고 강사 교체를 요구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2011년 1월 22일 류 박사가 학부 강사 인사 담당자로부터 받은 2011년 2학기 강의 배정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
 
이를 두고 류 박사는 학교에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류 박사는 “유학대 행정실장에게 찾아가 문자 통보 사실을 따지니 잘못 보낸 거라고 변명했다”며 “납득할 수 없었다”고 반발했다. 이 때문에 학교가 류 교수의 강의 배정을 거부하는 데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류 박사의 강의를 추천했던 박상환 교수는 “학교에서는 일방적으로 강의를 박탈하고는 강의를 준 적이 없다고 외부에 알렸다”며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학교나 삼성(재단) 쪽에서도 류 박사가 강의하는 것을 원치 않고 추천해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류 박사는 강의 박탈 이유에 대해 “학교는 강의평가 결과에 따른 조치라고 하다가 나중엔 과격한 노조 활동이 우려된다는 것까지 추가했다”며 “성대는 ‘석궁 사건’으로 알려진 김명호 교수 사례에서도 보듯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삼성재단과 학교 이익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강사 임용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성대 홍보팀 관계자는 8일 “강사 배정은 학부 강사선정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류 박사는 추후 변경된 강사 배정 명단에 포함됐다”며 직인 조작 의혹에 대해 “지도교수 허락 없이 서명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류 박사의 중국 연수 후 강의 취소 건에 대해서는 “류 박사가 학부에서 추천되지 않았다면 강의평가 등 여러 기준에서 충분하지 못했던 것 때문”이라며 “강사 임용에 재단이 개입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부인했다.

류 박사는 학교 정책이나 제도에 꾸준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인물이었다. 지난 2000년 재단의 등록금 12.7% 인상 후 학생들의 본관 점거농성을 도운 배후 인물로 지목됐고 학술대회에서  대학본부가 추진하던 유교의 현대화 논리를 비판해 학교당국이 껄끄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10년 6월 중국으로 연수를 떠나기 전에는 KBS <추적 60분> ‘시간강사, 그는 왜 죽음을 선택했나?’ 편에 출연해 학교의 시간강사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학장, 지도교수와 3자 면담에서도 학장이 ‘학교가 개인(강사)에게 굴복했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시간강사 또는 겸임교수 등 비정규직 교수들의 열악한 처우가 최근에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에는 성대 등에서 시간강사와 겸임교수 신분을 전전하던 한 비정규직 교수가 저임금의 생활고에 시달리다 옥탑방에서 추락 후 숨을 거두기도 했다.

   
▲ 김영곤 전 고려대 세종캠퍼스 시간강사와 류승완 전 성균관대 시간강사는 지난 7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갔다.
ⓒ강성원
 
지난 7일 류 박사와 함께 국회 앞 1인 시위를 함께한 김영곤 전 고려대 세종캠퍼스 시간강사는 지난해 말 박사학위가 없는 강사에게 강의를 맡기지 말라는 김병철 총장 이하 교무위원회 결정에 따라 계약이 해지됐다. 전국강사노조 고려대 분회장인 김 강사가 임금단체협상을 이끌어 표적이 된 것이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했고 고대는 박사 학위가 없는 강사들을 일괄적으로 계약 해지 조치했다.

올해 고대 세종캠퍼스에서는 박사학위가 없는 강사가 포함된 핵심교양(16개)과 전공과목(31개) 47개를 폐강했고 1학점짜리 체육과목 44개를 신설했다. 이 때문에 수강신청기간 신입생들은 정원 초과로 ‘등록 최소신청학점’인 12학점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으며, 수강 정정 기간 전체 정원을 없앤 결과 특정 수업은 인원 쏠림으로 1.5배~2배의 인원이 늘어나 수업 질 저하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이종균 고대 세종캠퍼스 교무지원팀장은 8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핵심교양 16개 과목이 준 것은 인정하지만 그 중 9개 과목은 박사학위 소지자가 하던 강의였다”며 “실험·실습·실기 과목은 여전히 박사학위가 없어도 강의할 수 있고, 학생들의 수업 질을 높여주기 위해 이론에 관해선 박사 학위 소지자가 하는 게 타당하다는 게 교무위원회의 결정”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정작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김영곤 강사를 포함한 박사학위 미소지자들의 이론 수업 불허 방침에 대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수업권 침해이자 강사의 교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고려대 안암·세종 캠퍼스 총학생회와 시간강사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학생대책회의는 지난 6일 고대 안암캠퍼스 중앙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사문제 해결과 세종캠퍼스 수강신청 파행의 시정을 학교 측에 요구할 것을 결의하고 서명운동을 진행해 2천 명 이상 학우들의 지지를 얻었다”며 “비민주적인 학교운영이 묵인되면 고려대는 자정능력을 상실할 것이며, 강사들의 처우가 더욱 악화되고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되더라도 개선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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