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21일 유신체제하에서 과거 합법을 가장해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도구였던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긴급조치의 근거가 됐던 유신헌법 53조는 심판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지난 2010년 2월 긴급조치 피해자 오모씨 등 6명이 제기한 유신헌법 53조와 긴급조치 1·2·9호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긴급조치 1호와 2호, 9호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의 청구인이 위헌 여부 심판 대상으로 삼았던 유신헌법 제53조에 대해서는 “긴급조치를 발령할 수 있는 근거 기준일 뿐 당해 형사사건 재판에 직접 전제되는 것이 아니다”며 “긴급조치 위헌을 확인하는 데 유신헌법 제53조는 심판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선고했다.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유신 긴급조치 피해자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심판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헌재는 유신체제하에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도구가 됐던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긴급조치 1·2호에 대해 “국가 긴급권은 정상적 헌법 질서 안에서 비상사태에서 예외적이고 임시적인 조치에 한정 돼야 한다”며 “입법목적의 정당성이나 방법의 적절성을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고 헌법개정권력의 행사와 관련한 참정권,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또 긴급조치 9호에 대해서는 “앞서 긴급조치 1·2호에서 살핀 바와 같이 죄형법정주의를 위배하고 헌법 개정에 대한 참정권과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면서 아울러 “학생의 정치 참여 금지를 규정함으로써 집회·시위의 자유, 학문의 자유,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기책임의 권리 등 여러 측면에서 헌법에 위반한다”고 재판부 전원 일치 의견을 내렸다.

이 같은 헌재 판결에 대해 이석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오늘 헌재의 위헌 결정은 41년 전 헌법을 파괴하고 기본권을 제한하며 사법부 권능을 마비시켰던 긴급조치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을 재판부 전원 합의로 명확히 한 것”이라며 “향후 긴급조치로 사법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구제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선고를 듣기 위해 헌재를 찾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오늘 헌재에서 긴급조치 위헌 판결을 내렸지만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로 잡혀가 받았던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상처가 아직도 나에게 남아 괴롭다”며 “유신독재로 참혹한 암살을 당한 장준하 선생과 정신적·육체척 상처를 받은 동지들을 위해 유신 잔당들과 힘차게 싸워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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