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일 년에 외국 여행을 몇 번이나 갈까. 아마도 많은 기자들은 그리 길지 않은 휴가 기간과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상 자비 부담으로 외국 여행을 할 엄두를 내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일부 기자들은 자기 돈을 들이지 않은 나름 ‘합법적’ 방법으로 출입처를 통해 외국 여행을 가곤 한다. 이것이 바로 출입처를 가진 기자들에게 주어지는 특혜인 외유(外遊)성 출장, PR 용어로는 ‘팸 투어(Familiarization Tour)’다. 주로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여행의 대상이 되기에 미디어 투어(Media Tour)라고도 부른다.

지난 13일 미디어오늘에서는 다음 주 국방부 기자단이 외국 방위산업체의 지원을 받아 무더기로 외국 출장을 떠나는 사실을 보도하며 시기와 성격의 부적절함을 지적했다.(국방부 기자들, 한반도 전쟁위기에 무더기 외국출장) 북한이 오는 21일까지 실시되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훈련에 대해 군사적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는 와중에 국방부 출입 기자단이 외국 방위산업체로부터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받아 ‘미디어 투어’를 가기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성격의 미디어 투어는 국방부 기자단만 가는 것이 아닌 지경부나 농식품부 등 타 출입처 기자단도 정기·비정기적으로 가는 일종의 취재 관행이다. 하지만 이런 출장이 ‘관행’이라고 해서 모두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몇몇 외국 출장을 다녀온 기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기업체가 비용의 전액을 부담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관광이나 골프 일정이 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취재를 위한 출장이라는 명분으로 충분히 즐길 만큼 즐기다 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기자들은 현지에서나 돌아온 후 기사를 쓰지만 기사 내용은 대체로 후원 업체에서 제공한 자료나 홍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국방부 기자단이 쓴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특정무기업체의 후원을 받고 취재에 응했을 뿐 아니라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위중한 시기에 외국 출장을 떠나는 것은 시기상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많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보수 논객으로 알려진 지만원씨조차 기자들의 ‘정신상태’까지 운운하며 기본 임무를 망각했다고 힐난했을까. 지씨가 그런 혹평을 할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떠나 그가 말하고자 한 취지는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 있다. 또한 이 기자들이 소속된 언론은 현역 군인들과 장성들이 지금 ‘이 시국’에 골프를 쳤다고 비판했지만 정작 자사 기자들의 ‘같은 시국’ 출장에는 눈감아 주고 있다. 언론이 이처럼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국민은 더 이상 기자와 소속 언론사를 신뢰할 수 없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에는 ‘회원은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일체의 금품, 특혜, 향응을 받아서는 안 되며 무료여행, 접대골프도 이에 해당 한다’고 명시돼 있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기자들에겐 기자 윤리강령부터 다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들 말처럼 ‘떳떳하게 검증하는’ 기사를 쓰고 싶다면 떳떳하게 자사 부담으로 가는 게 맞다. 회사 사정상 자비로 가는 건 힘들다고 하지만 국민을 대신해서 꼭 가야 할 취재라면 언론진흥재단 등 공익적 루트를 통해 보다 투명하고 떳떳하게 취재지원을 요청하는 방안을 찾아보는 편이 낫다. 
 
관례가 당연시돼선 안 된다. 자기비판에 무감각한 언론은 권력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이는 기자들에게 지나친 잣대가 아니다.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갖춰야 할 덕목이자 책무다. 그런 점에서 기자들은 지만원씨의 독설을 무시할 게 아니라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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