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내 놓은 기초노령연금을 차등 지급하겠다는 잠정안을 두고 노인단체를 비롯해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애초 박근혜 당선인이 약속했던 대선 공약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박 당선인은 당초 대선 공약에서 만 65세 이상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기초연금 확대하고 지원금도 현재 9만7100원에서 20만 원으로 두 배 늘려 지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인수위의 기초연금 도입 잠정안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을 네 그룹으로 나눠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지 않은 소득 하위 70%에게만 20만원을 주고 나머지 그룹은 국민연금 가입여부와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하게 된다.

얼핏 보면 국민연금 성실 납입자가 역차별 받는 데 대한 형평성 문제를 차등 지급으로 보완하는 복안 같지만 기초연금의 도입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재원 마련에 대해서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이해당사자인 노인단체에서 이번 수정안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KARP)회장은 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기초노령연금법 시행 후 미지급분 1%를 지급해 달라는 우리의 요구를 전부 뒤엎고 인수위는 한 달 전에 보낸 건의서에 답변도 없다”며 “정책을 세울 때 미리 소상하게 안을 내놓고 의견을 구했어야지 살짝 던져놓고 눈치 보는 인수위가 한심하고 걱정스럽다”고 비판했다.

주 회장은 또 “돈이 얼마가 들어가는지는 더하기 빼기만 해도 계산이 나오는데 그거 가지고도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답답하다”며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면 매년 64조가 생기는데 이걸로 당선인이 약속한 모든 공약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변창남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장도 “국민연금을 내지 않는 사람만 두 배로 올랐는데 그건 우리 요구와도 맞지 않다”며 “철저하게 조사해서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기초연금을)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서울 영등포의 한 철재공장 밀집지역에서 한 노인이 수레를 끌고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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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민주노총 정책부장은 이번 인수위 수정안을 두고 “애초 기초연금의 도입 취지는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어도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노인들에게 국민연금 부담을 낮추면서 기초연금을 20만 원을 주는 게 핵심이었다”며 “국민연금 수혜 여부에 따라서 기초연금을 감액하는 수정안은 당초 취지랑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정책부장은 이어 “지금 노인세대는 국민연금에 가입 못 하거나 가입기간이 짧아서 국민연금 못 받는 세대가 많지만 2030년이 되면 국민연금 가입자가 50%가 넘고 2050년엔 65%가량이 국민연금을 받게 된다”며 “10년 넘게 국민연금을 낸 사람들이 고작 3~5만원 기초연금을 더 받는다면 이는 형평성을 해소했다고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재원 마련의 문제에 대해서도 “지금은 지급에 관한 것에만 초점이 맞춰 있는데 재원마련 방안도 함께 묶어서 논의해야 한다”며 “노인 인구수가 해마다 증가함에 따라 필요한 사회적 재원은 늘어날 수밖에 없어 이제는 부유층 증세로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9일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연금행동) 발족에 참여했던 고현종 노인노동조합 사무처장은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당시 꼭 지킬 약속만 한다며 신뢰의 정치를 내세웠고 기초연금도 처음에는 다 준다고 했다가 말 바꾸기를 반복했다”며 “이제 와서 공약을 바꾼다면 국민에 대한 사기죄로 고소해도 마땅하다”고 쏘아붙였다.

고 처장은 “재정 부담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박 당선인이 주장하는 조건에 따른 선택적 복지만이 아니라 선택적 증세를 해서 자기가 했던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처음 약속한대로 모두에게 똑같이 20만원을 주고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를 통해 재분배하는 방식으로 가야지 이런 변칙적인 방법을 쓰는 것은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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