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상반기 MBC, KBS, YTN, 연합뉴스 등 언론사 연쇄파업투쟁은 구조적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는 싸움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13일 한국언론정보학회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2012 언론대파업, 의미와 과제’ 토론회에 참석한 이강택 언론노조위원장은 올해 상반기 언론사 연쇄파업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한계와 진전이 동시에 있었으며 단기간에 승부를 보기는 어려운 싸움이었다”고 밝혔다.

이강택 위원장은 “이번 파업은 수천 명의 언론노동자들이 집회에 참석하는 등 이전보다 많은 수가 결합했고 공정보도와 언론 자유에 대한 의식의 각성이 상당히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우선 성과를 짚었다. 이 위원장은 그러나 “이번 파업은 이전과 다른 양상이었다. (방송사의 경우) 사내 비정규직과 외주제작 비율이 전보다 높아지며 파업 기간 중 많은 인력이 대체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시청자 입장에선 파업언론사를 대체할 수 있는 미디어도 많아졌기 때문에 파업의 물리적 파괴력이 이전보다 약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단기간 승부를 보기 어려워 결국 파업이 길게 갈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장기파업을 경험한 조합원의 상당수는 값진 투쟁의 기억만큼 ‘패배’의 경험도 갖게 된 게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으로 비판받던 사장들 중 물러난 이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MBC노조는 지난 7월 17일 최장기파업(170일)을 끝내고 업무에 복귀했다. MBC 경영진은 지난달 28일 현재 조합원 8명을 해고하고 219명을 징계했다. 최근엔 해킹프로그램을 이용한 노조 및 조합원 불법사찰 의혹까지 불거지는 등 논란은 계속됐다. 정영하 MBC노조위원장은 “복귀 이후 50일이 파업 때보다 치열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우리의 싸움을 지지해줬던 분이나 조합원들이 지쳐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95일간 파업하고 6월 8일 현장에 복귀한 KBS새노조의 경우 사측이 133명의 조합원을 징계했다. 23년 만에 파업에 돌입했다가 파업 103일째였던 6월 25일 업무 복귀를 선언한 연합뉴스 노조의 경우에도 경영진이 9명의 조합원을 징계하는 칼바람을 맞았다. YTN노조는 2008년 공정방송투쟁이후 지금까지 6명의 기자가 해고되고 45명의 조합원이 징계를 받았다. 이들 언론사 네 곳을 합치면 모두 412명이 이명박 정부 들어 공정방송을 외치다 징계를 받았다.

파업에 나섰던 것만으로 의미 있는 평가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같은 광범위한 탄압을 감수해서였기 때문이다. 김현석 KBS새노조 위원장이 “파업 이전에는 취재현장에서 욕을 많이 먹었지만 파업 이후엔 쫓겨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당장의 성과보다 공정보도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 자체만으로 언론사 노조는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상반기 연쇄파업에 대한 날선 평가도 나왔다. 이승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불공정보도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또 시민들은 파업 언론사의 공정성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안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의제를 충분히 담지 못한 채 특정 계층의 입장만 대변하는 보도가 반복되자 언론사에 대한 기대가 추락해 파업여론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평호 단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전 MBC PD)는 “공정보도의 중요성에도 2012년 대파업 과정에서 광범한 시민적 분노는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며 “언론노조와 시민단체 연대 틀이 시민적 분노를 조직화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김평호 교수는 이어 “언론노조가 언론개혁 과제의 중요성을 두고 기자와 PD 등 언론인 사이에 암묵적 동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상반기 파업 이슈를 갖고 하반기에도 파업을 불사하는 대투쟁이 예고돼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MB의 언론장악체제를 끝장내고 박근혜 후보의 언론장악 세습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총력 투쟁할 것”이라며 하반기 총파업 재개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영하 MBC노조위원장은 “지난 170일 파업의 힘이 있기 때문에 9기 방문진이 김재철 사장을 해임할 이유가 없다고는 못할 것”이라 예상한 뒤 “노조는 사장퇴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현석 KBS새노조위원장은 “KBS는 대선공정보도와 오는 11월 말 사장 교체기에 낙하산 사장을 저지하는 싸움이 남아있다. 이 싸움의 결과에 따라 상반기 KBS 파업을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언론사 연쇄파업의 목표였던 낙하산 사장 퇴출을 위해 법적·제도적으로 여전히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하반기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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