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기 KBS 이사회가 ‘공영방송정상화’라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오는 9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하지만 시작부터 이길영 현 KBS 감사의 ‘이사장 호선’이란 벽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KBS 새 이사회는 언론노조 KBS본부(KBS 새노조)의 95일 파업 이후 KBS의 공정보도기능을 복원하는 과제와 더불어 ‘특보사장’ 김인규씨의 임기가 오는 11월 끝나는 만큼 정치·자본 권력에서 자유로운 새 사장을 선출해야 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길영 감사가 KBS 새 이사장으로 호선될 경우 공정방송 복원노력이 시작부터 위기에 놓일 상황이다.

이길영씨는 1980년대 KBS 보도국장을 맡아 ‘땡전뉴스’를 총괄한 인물로,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보도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군사정권에서 ‘승승장구’했다. KBS새노조가 이씨를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시킨 장본인”이라 지적한 이유가 여기 있다.

새노조에 따르면 이길영씨는 대구경북한방산업진흥원 원장 재직 당시 친구 아들을 부당 채용한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되며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은 전력도 있다. 김인규 사장 취임 이후 KBS 감사로 부임할 당시 사내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던 이유는 이 같은 ‘도덕적 하자’ 때문이다. 새노조는 이 씨가 학력 조작 논란도 있다고 전했다.

이길영씨 외에도 ‘문제적 인사’는 또 있다. 여당추천 이사로 선임된 이병혜 전 아나운서의 경우 2009년 한나라당 추천으로 미디어발전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2007년 대선 때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관리위원을 역임했다. 미디어발전위원회 활동 당시 KBS 라디오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이씨는 해당 활동 사실을 제작진에게 알리지 않아 문제가 일기도 했다. 역시 여당추천 인사로 선임된 양성수 전 KBS 아트비전 사장 또한 2007년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에서 언론특보로 활동한 인사로 알려져 정치적 편향성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 같은 인사들의 이사 선임은 이명박 정부가 KBS의 친정부 편향성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밝힘과 동시에 언론장악국면을 이어가며 특정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8기 KBS 이사를 지낸 이창현 국민대 교수(언론정보학)는 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특보사장(김인규)과 경제계인사(손병두 KBS이사장, 전경련 부회장) 모두 KBS 공영방송 강화에는 도움이 안 되는 부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지적하며 “새 이사회에서도 특정 정치인과 관련성이 높은 이들이나 경제계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들의 선임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남철우 KBS새노조 홍보국장은 “8기 이사회의 경우 ‘이승만 미화’ 다큐멘터리의 편성과 제작에 관여한 전력이 있다”며 "9기 이사회는 경영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을 넘어 특정 정치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영간섭이나 편성권 침해를 해선 안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KBS 새 이사회는 KBS의 제 1과제가 정치적 독립인만큼 사장선임구조 개선 논의가 또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야의 7대 4 구도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한계는 여전하다. 언론계에선 김인규 사장의 임기가 세달 여밖에 남지 않아 야당 추천 이사들을 중심으로 ‘김인규 해임’보다는 ‘연임반대’ 논의가 집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추혜선 언론연대 사무총장은 “이사회가 공영방송의 틀을 잡는 거버넌스 역할 해야 하는데 8기 이사회는 아무 역할도 못한 채 현 정권의 거수기 역할만 했다”고 비판한 뒤 “KBS 새 이사진이 공영방송 정상화 의지를 보여주고자 한다면 우선 이길영 이사장 선출부터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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